사회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 여는 세상-“내 죽음 내가 결정하는 시대”➬‘轉迷開悟’

능산선생 2026. 5. 13.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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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인간은 능동적인 존재로, 삶을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능동적으로 의미를 생산해낸다. 따라서 죽음이란 내가 만들어온, 그리고 앞으로 만들 수 있는 의미의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의 죽음보다 어린아이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도 노인은 어느 정도 삶에서 자신의 의미를 실현한 반면, 어린 아이는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삶의 의미를 꽃피지도 못한 채 져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의 저서에서 인생의 유일한 최대 관심사는, 그 자신이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물론,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신조로 삼아 생활하는 것이었다. 그 길에 자신의 몸을 바치는 모습은 그가 말하는 ‘실존’이었으며, 이런 관심에 대해 타성적인 자신의 생을 새삼 스스로 대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주체적 자신의 인간다운 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에게는 육신이 살고 죽는 일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을 초월해 가치 있는 것의 존재를 믿으면서 그 희망에 목숨을 걸고 육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을 의미했다

아무런 희망 없이 영원한 생명에 의탁해 살아가지 않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적이고 육체적인 생명을 살아가는 생은 그 한 순간 한 순간이 살아 있는 시체로서의 생이다. 설령 그러한 생이 일반적 의미에서 희망에 가득 차 있고 영광으로 빛나는 것일지라도 실은 인간적으로 절망이며 비참한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인간이 병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동물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절망이란 최대의 불행이자 비참함일 뿐 아니라 타락인 것이다

붓다는 ‘나’라는 자아관념을 벗어나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아설’이다. 나라는 것은 없고, 따라서 나라는 관념이 가진 욕심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윤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은 삶과 구별되지 않는다. 죽음이 곧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교는 허무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불교는 지향해야 할 목표를 명확히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열반’으로 일체의 자아관념을 다 버리고 그 무엇보다 자유로워진 궁극의 상태이다. 붓다가 다다른 단계이자, 스님들이 끊임없이 이루려고 노력하는 상태가 열반이다. 열반은 윤회조차 끊긴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따라서 열반의 경지에 이르면 죽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현상이다.

불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나온 주장이다. 또한 죽음을 이해함으로써 현실계보다 높은 경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다.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건수가 50만 건을 넘어섰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 3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유보(미시행)·중단 이행 건수는 7882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3월 말까지 누적된 연명의료 유보·중단 이행 건수는 총 50만622건으로,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시행한 2018년 이후 8년 만에 누적 50만 건을 넘어선 것이다. 성별로는 남성(29만2381명)이 여성(20만8241명)보다 많았고, 서울(32.7%)과 경기(19.4%) 등 수도권이 과반을 차지했다.

연명의료(延命醫療, Medical Care for Life Prolongation)란 심폐소생술 시행,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통해 임종을 앞둔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의료적 조치를 말한다. 연명의료 유보는 임종 단계의 처음부터 연명의료를 받지 않는 것을, 연명의료 중단은 시행하던 연명의료 자체를 그만두는 것을 뜻한다.

환자의 뜻이 반영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에 따른 결정, 그리고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한 경우 가족이나 친권자가 대신 결정하는 경우로 나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임종에 대비해 연명의료에 대한 의향을 미리 작성해두는 문서다. 19세 이상이면 전국 지정 등록기관을 통해 가능하다.

존엄사가 ‘현대판 고려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역시 지난 2018년 2월 4일 부터 연명의료이 시행되었지만 아직 안락사와 존엄사를 혼동하거나 사회적 인식이 준비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참회록’에서 불교경전에 나오는 이 ‘흰 쥐와 검은 쥐의 비유’를 들어서 인생의 무상과 깨우침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톨스토이는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허망하게 낭비할 수는 없음을 투철하게 반성하고, 어제의 그릇된 삶에서 어지러운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에 이르는 전미개오(轉迷開悟)한 참회와 성장의 새로운 삶을 그의 소설 속에서 제시하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치 있는 삶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인생, 그것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이다.

‘당신이 죽을 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울고 있을 그 순간에 당신은 행복할 것인가?’

그래서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학습효과가 되지 않길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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