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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가 선순환하는 사회를

능산선생 2006. 3. 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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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연구 의혹에 대한 서울대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각종 언론과 정부, 대통령부터 어린이까지 초미의 관심사였던 논란이 사실 확인 차원에서는 일단 정리가 되었다. 근 두 달 간 사태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격렬한 감정 대립과 편가르기까지 일어났다.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계속 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신뢰’라는 단어였다. 이번 사태는 무엇보다도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신뢰의 수준이 얼마나 낮은가를 일깨워 줌과 동시에 신뢰의 기반을 구축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본다.

신뢰가 깨졌을 때 드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

우리 사회 시스템은 대부분 신뢰를 기반으로 하며, 그 신뢰가 깨어졌을 때는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고 비용을 치러야만 한다. 연구 자료에 대해 신뢰하지 않으면, 학술지에 제출된 모든 자료를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서 검증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권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항에서 당하는 번거로움은 익히 아는 바다. 주민등록증을 믿지 못한다고 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황 교수의 연구 자료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논란의 상당 부분은 어느 누군가에 대한 비방이었고, 그 비방은 명시적이던 묵시적이던 음모론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누군가 ‘잘 나가는’ 황 교수를 시기하고 업적에 흠집을 내려는 음모, 그리고 나아가서는 우리 대한민국의 성공을 저지하려는 음모가 기본이고,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입장 표명이 있을 때마다 무언가 그 저의에 음모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음모론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사실 확인에 의해 음모의 실재 여부가 판명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음모론은 드러난 사실과 타인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음모론에서는 언행일치(言行一致)는 없고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처세가 우선한다고 본다. 따라서 선의의 경쟁이나 영예로운 승리, 믿음직한 협력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음모론은 사회적 신뢰의 수준이 낮아졌을 때 힘을 얻게 된다.

식견과 양심에 입각한 참여로부터

앞으로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각 부문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이 보다 활발하게 개진될 수 있어야 한다. 황우석 교수는 과학자로서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그를 스타 과학자로 만든 것은 과학자가 아니라 언론과 정부, 정치인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과학적 사실은 전문가인 과학자들에 의해 진위가 규명될 수밖에 없다. 황우석 신화 창조의 열풍이 부는 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연구실을 지키던 과학자들도 많았다. 과학은 전문가들의 상호비판과 검증을 통해서 발전해 나감에도 불구하고, 비판의 목소리 올려봐야 “엽전은 다른 사람 잘되는 꼴 못 본다”는 빈정거림이나 듣고, 전향적 사고와 추진력 부족한 못난이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물론 전문가에 대한 신뢰는 전문성과 함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객관성을 조건으로 한다. 전문가들이 식견과 양심을 걸고 사회적 논의 과정에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될 때 신뢰의 선순환 과정이 작동할 수 있다. 우리나라 벤처 대부 정문술 미래산업 전(前) 회장의 말씀대로, “신뢰는 공멸을 피하는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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