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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월남 敗亡’36년後,지금,대한민국號는?” | ||||||||||||
“團生散死로 ‘대한민국 헌법1조’로 통일한국 완결판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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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치상태에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 월남 전쟁’에 대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는 북한 김일성 정권이 일으킨 ‘6.25동란’에 대해 우방인 연합군이 제 2차 세계대전이후 최대 규모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 자유민주주의국가 ‘대한민국’을 지켰고, 대한민국은 이에 대한 첫 보답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다른 하나는 국론분열은 곧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붕괴를 초래한다는 것을 ‘월남 패망’을 통해 터득했다. 지난1882년 프랑스 식민지가 된 월남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호찌민이 지도하는 민족 세력인 비엣민(월맹)과 남북으로 대립하게 된다. 이로 인해 1946년 말부터 양국 사이에는 전쟁이 발발했다.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이라고 부르는 타우 장군의 정권이 들어섰다. 베트남은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분단되었고 1964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은 미국에 맞서서 베트남 전쟁(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려야 했다. 11년동안 내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월남이 무너졌다. 왜, 월남 패망사에서 보듯이 자유민주주의가 사회주주의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가? 이는 지도층 위로부터 썩은 부정부패와 정교분리 실패, 언론 편파보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1964년 5월9일 미국의 존슨대통령은 자유민주중의 국가를 지키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25개 자유우방국에 대해 참전을 호소, 6.25동란이후 첫 해외파병을 감행해 우리 국군을 목숨을 건 전투를 벌여 ‘귀신 잡은 해병대’의 명성을 세계에 날렸다. 그러나, 세계 우방국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월남(자유진영)과 월맹(공산진영)으로 나뉜 베트남. 길었던 월남전이 종식되고 0.5퍼센트의 간첩, 시민단체, 종교단체, 프락치의 반미운동과 미군철수 운동의 주도로 미군은 철수의 길을 밟았다. 결국 2년 만에 월남은 패망하고 월맹에 의해 적화통일 되었다. 통일운동을 표방하는 시민단체들이 ‘언론사’를 장악하고 월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다. 언론사들은 연일 ‘통일’을 내세운 방송을 내보냈고 월남의 국민들은 이러한 언론에 도취되었다. 종교인들과 학생들, 인도주의자는 이러한 시위를 도왔으나 실상은 자신들이 국익을 위해서라고 생각했을 뿐 월남의 공산화라는 내재된 목적을 알지 못했다. 결국 전체 인구의 0.5퍼센트가 대다수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를 조종하여 월남을 좌경화시켰고 결국 패망에 이르게 했다. 이에 따라 월남은 힘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정부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간첩들에 의해 망했다는 주 월 마지막 공사 이대용 장군의 경고를 되새겨 봐야 한다. 즉, 지도자의 리더십이 그 나라를 興하고 亡하느냐에 길로 갈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월남 패망에서 볼수 있다. 패망 36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베트남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폭격’등에서 볼때 대한민국은 보혁대결로 남남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좌파세력은 아직도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으로 보지 않고 자작극이라고 까지 몰아가고 있다. 국적이 단지 미국이란 이유로 한심한 재미 학자들은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으며 참여연대도 덩달아 춤을 추며 유엔에 보고서까지 제출하는 우스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헌법 제20조에 따르면 “1.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2.국교는 인정되지 않으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정교분리의 원칙이 세워져있다. 그러나 4대강 사업과 이슬람채권 관련법 ‘수쿠크법안’을 놓고 헌법상 정교분리원칙이 명분화 되어 있는데도 국책사업의 반대를 들고 나오고 일부에서는 대통령 하야의 극한 주장까지 했다.
28일은 이순신장군 탄신 466주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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