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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弔問정국,‘악마의 키스’”

능산선생 2011. 12. 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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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弔問정국,‘악마의 키스’”
“弔問 甲論乙駁,‘민족화해․통일의 길’ 匕首”
2011년 12월 20일 (화) 13:32:08 편집인 편집국장 김원섭 infinew3@newsplus.kr
   
옛날 중국의 葬禮 풍습은 지금처럼 封墳을 만들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시신을 풀이나 거적에 싸서 들판에 버렸다. 이른 바 草葬이 그것인데, 사실 ‘葬’자 자체가 死(즉 죽은 이의 시신)의 아래 위에 풀로 덮고 있는 모습에서 나온 글자다. 자연히 까마귀나 들짐승의 밥이 되기가 쉬웠다. 그래서 遺族(유족)들이짐승을 쫓기 위해 며칠이고 지켜 서 있어야 했는데 여기서 나온 글자가 弔다. 즉 사람이 활(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弔다.

問은 물론 慰問의 뜻으로 弔問이라면 喪事를 당한 遺族을 찾아 슬픔을 위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행위를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덕에 속한다. 우리의 경우, 喪家를 찾아 香을 피우고 靈位(영위)에 절을 한 다음 喪主(상주)에게 간단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곧 지금의 弔問은 故人과 遺族을 함께 慰勞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에 “지생자(知生者)는 조(弔)하고 지사자(知死者)는 상(傷)이니, 지생이부지사(知生而不知死)이어든 조이불상(弔而不傷)하고 지사이부지생(知死而不知生) 이어든 상이부조(傷而不弔)이니라.”라고 했다.

즉 “산 사람을 아는 자는 조문하고 죽은 사람을 아는 자는 슬퍼한다. 산 사람을 알고 죽은 사람을 알지 못하면 조문은 하되 슬퍼하지 아니하고, 죽은 사람은 알되 산 사람을 알지 못하면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되 (유족을) 조문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신묘년 토끼의 해의 해를 여를 정도 남겨놓은 지금, 대한민국에 弔問란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바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우리 아니 북한을 비롯한 한반도에게 故人과 遺族을 함께 慰勞할 수 있는 弔問의 길을 열었는가?

66년간 민족상잔의 비극을 자행해온 북한의 행위를 접어두고라도 지난해 3월 26일에 차디찬 서해 앞바다에 ‘46龍士’를 수장시키고 그해 11월 연평도를 폭격 민간인을 학살한 북한의 최고의 통치자이다. 물론 같은 민족으로 여민의 정을 느껴 ‘오호 통제라!’라고는 할 수 있다.

지금 종북세력은 사회 곳곳에서 현안에 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김 위원장의 죽음을 절호의 기회로 노리고 있다. 종북세력은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진보세력이나 보수세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글자 그대로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은 민주적 법치를 기본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반민주세력으로서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을 하고 사회를 기만해도 그들의 목적은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다.

이래서 교육.노동.복지등에서 먹이 거리를 찾아오던 이들은 김 위원장의 죽음을 이용,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대한민국을 전복 시킬 수 있다는 오판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일수 있다.

지금 남한은 종북세력의 활개로 누가 북한의 첩자인지 알 수 없는 형국으로 접어들었다. 이와 관련, 지난해 북간첩으로 저격 사망한 황장엽 씨는 “남한 내 간첩은 5만여 명 가량이고 권력 깊숙한 곳, 각 기관에 북쪽 사람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황 씨는 한 발 더 나아가 “청와대 수석비관회의 때 발언했던 수석비서관의 이름과 발언내용이 기록된 보고서가 그 이튿날 김정일 책상에 놓여 있다”는 증언까지 했다.

이들 간첩이 남한 내에 근거지를 마련한 것은 지난 10년 동안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방 후 첫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권이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하면서 간첩이라는 개념이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그 자리에는 간첩이 우리의 동포로 각인되었다.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공안기관·군대와 같은 대북 억제전력 부문의 업무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중요 정보를 다루는 기관안에 세작이 활동 중이라니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지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에서 우리는 보수-진보의 대립을 되새겨 봐야 한다.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이 막 이뤄지기 직전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북한은 돈이 없어 손을 내밀고, 김영삼 정부는 통 크게 거래를 하려 했고, 미국도 북핵 협상을 본격화하려했기 때문에 한반도 정세를 크게 바꿀 기회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한반도 정세가 불투명해지자 보수냉전 세력이 불안해하며 조문반대를 강력하게 밀고 나왔다. 대학 학생운동권 중 민족해방파 계열에서는 분향소 설치를 강행했고, 민중민주 계열은 주사파의 입장이라며 반대했다. 이 같은 대립으로 모처럼 군부정권에서 문민정부로 옮겨탄 대북정책에 혼선을 빚었으며 결국 해방후 첫 정권교체를 이룬후 진보세력이 압권하면서 종북세력은 밑에서 기생하며 염주 알처럼 조직을 확대, ‘세작천국’을 만들었다.

북한은 지난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고위급 조문단 파견하는 조문외교를 펼쳤지만 결과는 곧 보복이란 화살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나 좌파들은 벌써부터 ‘조문’에 대한 이야기를 떠 올리며 자유진영 단체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애도의 물결’을 조성해 가고 있다. 문모 Y대 교수는 진보온라인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차원에서 조문하기 어렵다면, 이희호 권양숙 여사 등 관련 있는 분들이 조문위해 방북하겠다고 한다면 보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민주통합당은 북한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에 조의를 표한다”며 “북한 지도부는 한반도 동북아 정세가 악화되지 않고 평화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태로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 10.4선언의 정신과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초당적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적과의 동침’이 아닌 적과의 원수’상태에서 무슨 조문이 이루어지겠는가? 死諸葛走生仲達(사제갈주생중달: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쳤다)는 것처럼 김씨 왕조가 행동을 보였다면 모르지만 남쪽은 퍼주기만 하고 북쪽으로부터 되로 받는 꼴로 한반도의 지형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치 않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지난 ‘10.26재보선’결과에서 보듯이 우리 젊은 층들이 이제는 이데올로기에서 초월, 실용적인 집단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진보와 종북세력은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냉철하게 판단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한다.

   

37년간 집권해온 김정일 시대는 이제 막을 내렸다. 이제 혼미한 북한 정국이지만 소위 북한측만 인정하는 김정은 체제. 그들의 길은 멀고 험난한 고행의 길이다. 이같은 고난의 길에서 헤어나는 방법은 딱 하나다. 곧 개방이다. 개방에는 우선 대화가 선행된다.

우리는 대화에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 행동해야 한다고 본다. 손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한쪽의 일방적 의지만으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타이밍이 맞아야 하고 대화의 무적과 필요성에 서로가 공감해야 한다. 대화를 위해서는 신중하되 열린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서 남북관계는 압박과 대화의 투트랙이 필요하다. 철저한 안보태세와 국제공조로 북한이 추가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면서도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김위원장의 弔問정국은 ‘악마의 키스’로 돌아올수 있다. 따라서 지금 일고 있는 弔問 甲論乙駁은 민족화해와 통일의 길에 匕首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손자’ 구지편에 나오는 말을 되새겨 보며 안보의식을 높여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장비만으로는 이길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병사의 일치단결이다. 용감한 병사와 약한 병사가 하나가 되어 앞으로 나갈수 있도록 정치를 해야 하며, 감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야 한다. 장수는 모든 병사를 마치 한사람 움직이듯 이끌지 않으면 승리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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