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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박종철 고문치사’ 침묵자였다?”

능산선생 2011. 3. 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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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박종철 고문치사’ 침묵자였다?”
“정의사제단.부검의사 아니면 안검사도 침묵코드 일관했을걸”
2011년 03월 09일 (수) 11:20:35 윤성현 기자 yun@newsplus.kr
   
지난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 정치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놓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특히 사건 담당검사였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최근 출판기념회를 여는 등 고문의 폭로 일등 공신으로 나서고 있자, 일부에서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박종철 씨는 지난 1987년 1월14일 오전 11시20분경 사망했다. 정부는 은폐하기 위해 고문수사관들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무마하려고 했다.

그러나 1월1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황적준 박사의 집도로 부검, 사인이 '쇼크사'가 아닌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발표해 물고문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부검소견서를 사실대로 작성했으나 사건축소에 급급했다. 그당시 검찰도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은 구속기소된 경찰관 2명뿐임"을 강조해 검찰의 소극적인 자세가 도마위에 올랐다.

이러한 가운데 5월18일 카톨릭정의구현사제단은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축소.조작되었음을 발표, 광주항쟁의 기념기간시기에 맞춰 민주화의 불을 댕기는 단초를 제공했고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부검한 황박사가 공개한 일기장에서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이 황박사에게 고문치사를 은폐하기 위해 박군의 사인을 심장쇼크사로 해달라고 압박한 사실이 기재돼 충격을 주었으며 당국은 재수사에 들어가는데 그때 재수사에 투입된 검사가 안상수 의원이다.

그래서 황박사와 정의사제단이 이뤄낸 공적을 안 대표가 가로채는 것은 위치에 맞지 않다는 여론이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와 동향출신인 안 대표는 박종철 고문치사 밝혀낸 검사의 꼬리표를 달고 YS 대표에 발탁, 자기와 전혀 관계없는 선거구 과천에 공천 받아 지금까지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이인영 최고위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담당검사였던 안 대표에 대해 "고문 가담자가 구속된 2명 외에 3명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이를 상부에 보고만 한 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이를 폭로하기 전까지 관계기관 대책회의와 안기부 요구에 따라 침묵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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