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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어허도야 이허도',735년만 통곡한다"

능산선생 2012. 3. 1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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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어허도야 이허도',735년만 통곡한다"
"彼岸.此岸인 환상의 섬'이어도',1952년 대한민국 해양관할권"
편집인 김원섭  |  기사입력 2012.03.12 16:35:49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솔남의 배여 잘잘 가는 건 잡남의 배여/ 어서 가자 어서 어서 목적지에 들여 나가자/ 우리 인생 한번 죽어지면 다시 전생 못하나니라/ 원의 아들 원자랑 마라 신의 아들 신자랑 마라/ 한 베개에 한잠을 자난 원도 신도 저은 데 없다/ 원수님은 외나무다리 질은 무삼 한질이든고/ 원수님아 길 막지 마라 사랑 원수 난 아니노라…'.

제주도 해녀들이 노동요로 불러온 구전 민요 '이어도 타령'이다. '이어도 타령'에는 이어도를 고된 삶의 목적지, 현세의 고난을 구원해줄 이상향으로 갈구해온 제주도 사람들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이어도는 한반도 최남단인 제주도 마라도 서남쪽 145km에 위치한 수중 암초다. 이름에 섬 도(島) 자가 있지만, 정상이 해수면 4.6m 아래 잠겨 있는 이 암초는 파도가 칠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에게 이어도는 허구이면서 실재인, 피안(彼岸)이면서 차안(此岸)인, 환상의 섬이었다. 그들은 먼 바다로 나갔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 뱃사람들이 이어도로 가서 저승의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믿었다.

옛날 제주도의 한 마을에 부부가 살았다. 하루는 남편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는데 돌아올 줄을 몰랐다. 이 배는 풍랑을 만나 한 섬에 표류하게 되었다. 그 섬이 다름 아닌 이여도이다.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이여도로 떠났다는 전설도 있고, 그 남편을 그리며 이여도를 노래한다는 설도 있다. 남편이 도착한 이여도를 과부들의 섬으로 그린 전설 도 있다. 또 아내가 남편을 찾은 후 이여도에서 돌아오다가 풍파를 만나 모두 죽었다는 설도 있다.

옛날 고려시대 충렬왕 3년 원의 지배를 받아 목관이 와서 통치하기 시작한 때부터 원말까지 제주에는 매년 공물을 중국에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공선은 북쪽의 산동에 가기 위해 섬의 서북쪽 대정의 모슬포에서 준비하여 출발했다. 언제인지 모르나 대정에 강씨라는 해상운송업의 거간인 장자가 있어서 이 공물선의 근거지를 이루고 그때마다 수척의 큰배가 공물을 만재하여 출발했다. 그런데 이들 공물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강씨에게는 늙은 부인이 있었다. 그녀는 슬픔은 이기지 못하고 “아아, 이허도야 이허도”로 시작하고 끝나는 노래를 짓고 이를 불렀다. 그 곡조는 처참하도록 슬펐다고 한다.

고은 선생의 시 '이어도'에서도 "아무도 이어도에 간 일이 없다/그러니 누구인가 갔다한다/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고 썼다.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은 지난1974년 발표한 중편 '이어도'로 전설의 섬 이어도를 우리 현대문학의 우뚝한 영토로 거둬들였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어도 이야기로 실은 '현실이라는 섬'에 갇혀 사는 우리 삶을 이야기한다. '천리 남쪽바다 밖에 파도를 뚫고 꿈처럼 하얗게 솟아 있다는' 현실 저편의 섬을 향해 몸을 던질 때, 현실이라는 섬과 그 속에서의 삶이 오히려 뚜렷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彼岸이면서 此岸인 환상의 섬인 이어도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으로 마찰의 섬으로 변하고 있다.

이어도는 수중 암초로써 가장 얕은 곳은 해수면 아래 약 4.6m이며, 수심 40m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북으로 약 600m, 동서로 약 750m에 이른다. 정상부를 기준으로 남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인 소코트라호가 처음 발견하여 그 선박의 이름을 따서 국제적으로는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 불리었다. 그리고 1910년 영국 해군 측량선 워터위치호에 의해 수심 5.4미터의 암초로 알려졌다.

1938년 일본이 해저전선 중계시설과 등대시설을 설치할 목적으로 직경 15미터, 수면 위로 35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어도가 위치한 해역은 1952년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을 선언한 평화선 선포수역 내에 있어 우리나라의 해양관할권에 속했었다. 또 1970년에 제정된 해저광물자원개발법 상의 해저광구 중 제4 광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대륙붕의 일부이기도 하다. 중간선 원칙에 따라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설정하게 되는 경우에 이어도 해역은 우리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수역내에 위치하게 되었다.

배타적 경제수역에서는 경제적 목적인지 아닌지를 불문하고 해상도시, 해상공항 등의 모든 목적의 인공도와 천연자원의 탐사, 개발, 보존, 관리와 경제적 개발 그리고 그 법의 경제적 목적을 위한 시설 및 구조물의 설치에 대하여 연안국이 배타적 권리를 가진다.

대륙붕의 상부수역이 공해로서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연안국의 해양구조물에 대한 배타적 권리는 대륙붕의 탐사와 그 천연자원의 개발의 경우에만 인정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에 있어서 해양구조물을 설치하는 경우 연안국은 타국의 권리를 고려해야 하는 기본적 의무를 부담하며, 해양구조물의 설치를 공표하고, 그 존재에 대한 항구적 경고 수단을 유지하여야 하며, 폐기되거나 사용되지 아니하는 구조물은 완전히 철거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어도 자체는 고조시에는 물론 저조시에도 수면위로 돌출하지 않는 수중암초로서 그 존재를 이유로 어느 나라든지 어떠한 영토의 주장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이어도에 인공도 또는 해양구조물을 설치하더라도 영토로는 인정될 수 없으며, 그 존재로서 영해, 배타적 경제수역 또는 대륙붕의 경계획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다만 해양구조물의 외연으로부터 500미터까지를 안전수역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어도 해역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태풍의 40%가 통과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하기 8~12시간전 이곳을 통과한다. 현재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에서 태풍의 위력이나 변화등을 정확하게 관측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측결과를 통해 태풍예보를 함으로써 재해를 줄여 나가고 있다. 이어도는 태평양으로 오가는 바다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연간 25만척의 선박이 오고가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서 안전항로를 확보하느냐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뿐 아니라 이어도 주변 수역은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히 중요시되고 있다. 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신 삼국지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군함이 통과하는 항로이자 주요 군사활동을 펼칠 수 있는 수역이다.

이어도는 주변 해역은 여러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춘 황금어장이다. 이어도 주변 해역처럼 어장형성에 필요한 좋은 환경을 고루 갖춘 해역을 우리나라 주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며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고 한다.

이어도 해역은 어업자원이 풍부해 현재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 어서들의 조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무분별한 남획과 오염으로 인해 서해의 어족수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 해역 일대를 활용하는 어업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어도를 기점으로 태평양으로 원양어업을 발전시킬 수 있어 이어도는 어업전진기지로서 가치가 역시 매우 크다고 볼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어도를 '제2의 독도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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