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우리나라 성인은 신체적인 통증을 덜 느끼고 가족에게 병수발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9명은 말기 환자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10명 중 8명 이상은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했다.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이 지난해 4∼5월 성인 남녀 1천21명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확인됐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항목들의 중요도 조사에서 ‘죽을 때 신체적인 통증을 가급적 느끼지 않는 것’에 대해 97%가 ‘중요하다’(매우 중요하다 + 중요한 편이다)고 답했다.
여러 항목 중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는 질문에도 통증을 느끼지 않는 죽음을 택한 응답자가 20.1%로 가장 많았다.
‘가족이 나의 병수발을 오랫동안 하지 않는 것’(18.5%), ‘가족이 나의 간병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을 많이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17.5%), '죽음에 대해 미리 심리적인 준비를 하는 것'(10.9%) 등이 뒤를 이었다.
‘임종 시 가까운 가족과 친구가 곁에 있어 주는 것’을 좋은 죽음의 요건으로 꼽은 응답자(5.8%)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좋은 죽음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완화의료나 연명치료, 존엄사에 대한 인식과도 이어졌다.
말기·임종기 환자들의 통증 완화 등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81.1%였다.
또 응답자의 91.9%는 말기 환자가 됐을 때 연명의료결정제도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68.3%),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56.9%) 등이 이유였다.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대해선 82.0%가 찬성했다.
‘의사 조력 자살’로도 불리는 조력 존엄사는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의사가 준비한 약물을 스스로 주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여기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41.2%),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기 때문’(27.3%), ‘죽음의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19.0%)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좋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서비스로는 ‘생애 말기 발생할 수 있는 통증 완화’(62.7%)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생애 말기 환자의 치료 비용 지원'(56.8%)이 뒤를 이었다.
인간은 능동적인 존재로, 삶을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능동적으로 의미를 생산해낸다. 따라서 죽음이란 내가 만들어온, 그리고 앞으로 만들 수 있는 의미의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의 죽음보다 어린아이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것도 노인은 어느 정도 삶에서 자신의 의미를 실현한 반면, 어린 아이는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삶의 의미를 꽃피지도 못한 채 져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의 저서에서 인생의 유일한 최대 관심사는, 그 자신이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물론,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신조로 삼아 생활하는 것이었다. 그 길에 자신의 몸을 바치는 모습은 그가 말하는 ‘실존’이었으며, 이런 관심에 대해 타성적인 자신의 생을 새삼 스스로 대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주체적 자신의 인간다운 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에게는 육신이 살고 죽는 일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을 초월해 가치 있는 것의 존재를 믿으면서 그 희망에 목숨을 걸고 육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을 의미했다
아무런 희망 없이 영원한 생명에 의탁해 살아가지 않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적이고 육체적인 생명을 살아가는 생은 그 한 순간 한 순간이 살아 있는 시체로서의 생이다. 설령 그러한 생이 일반적 의미에서 희망에 가득 차 있고 영광으로 빛나는 것일지라도 실은 인간적으로 절망이며 비참한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인간이 병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동물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절망이란 최대의 불행이자 비참함일 뿐 아니라 타락인 것이다
붓다는 ‘나’라는 자아관념을 벗어나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무아설’이다. 나라는 것은 없고, 따라서 나라는 관념이 가진 욕심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윤회’의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은 삶과 구별되지 않는다. 죽음이 곧 새로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교는 허무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불교는 지향해야 할 목표를 명확히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열반’으로 일체의 자아관념을 다 버리고 그 무엇보다 자유로워진 궁극의 상태이다. 붓다가 다다른 단계이자, 스님들이 끊임없이 이루려고 노력하는 상태가 열반이다. 열반은 윤회조차 끊긴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다. 따라서 열반의 경지에 이르면 죽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현상이다.
불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나온 주장이다. 또한 죽음을 이해함으로써 현실계보다 높은 경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다.
존엄사가 ‘현대판 고려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역시 지난 2018년 2월 4일 부터 연명의료이 시행되었지만 아직 안락사와 존엄사를 혼동하거나 사회적 인식이 준비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참회록’에서 불교경전에 나오는 이 ‘흰 쥐와 검은 쥐의 비유’를 들어서 인생의 무상과 깨우침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톨스토이는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허망하게 낭비할 수는 없음을 투철하게 반성하고, 어제의 그릇된 삶에서 전미개오(轉迷開悟)한 참회와 성장의 새로운 삶을 그의 소설 속에서 제시하였다.
그러나 존엄사에 대해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학습효과가 되지 않길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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