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권력자는 외롭다’는 대부분 사람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말이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을 보면 ‘최고 권력자는 서럽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아 보인다. 서러움이 권력의 속성은 아닌데, 노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는 일이 반대에 부딪치거나 실패해서 역효과를 낳을 때 서러워하는 것 같다.
노무현 정권의 특성이자 크나 큰 미스테리가 집권세력의 피해의식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신비화’한 대부분의 국민처럼 나도 누구나 대통령이 되면 그 순간 일생의 모든 유감과 한이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대통령의 경우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노대통령의 경우는 대통령이 되기 전보다 된 후에 오히려 더 한에 사로잡히고, 폐쇄적이 된 것 같다. 국민과 언론의 그에 대한 주문이나 비판을 ‘대통령직’ 또는 ‘대통령의 권력을 행사하는 자’에 대한 요구나 비판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 노무현에 대한 무시요 비난으로 간주해서 분노하고 괴로워하면서 설욕을 다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주위사람들 역시 유사한 인식과 감정을 가진 듯하다.
노대통령의 이런 특수한 심리를 알았다면 노대통령이 당선자로서 ‘인수위’를 만들어서 정권을 인수할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 국민은 그를 어떻게 자신감에 찬, 포용력있는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열심히 연구했을텐데, 우리 국민은 그저 과거와 같이 권력자에 대해서는 비판과 견제만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노대통령은 처음에는 자기에게 투표하지 않은 국민도 끌어안겠다고 했지만 너무나 빨리 국민의 절반을 포기했다. 그들의 비판과 우려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대통령이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려는 노력을 좀 더 꾸준히 성심껏 했더라면 우리 사회는 편안하게 발전하고 있고 국가경쟁력도 저하되지 않았고,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대했던 사람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국민을 너무 선명하게 적과 동지로 구분한 결과 그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슬픈 대통령이 되었고, 그의 슬픔은 모든 국민의 불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자를 ‘섬기는’ 길은 ‘직언’ 뿐이었다. 권력자의 노여움을 사서 어떤 불이익 내지 재앙이 오더라도, 목숨을 걸고라도 ‘직언’을 하는 것이 옳은 신하, 선비, 지식인의 도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절대왕조시대의 이야기이고, 권력자가 투표로 선출되는 오늘날은 국민들이 권력자를 격려하고 회유해서 바람직한 방향의 통치를 유도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정권에서는 그런 연구를 해서 실효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없다. ‘피통치학’은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학문이지만 단시일 내에 성숙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노대통령에게 남은 임기 동안은 온 국민의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부탁해 보는 수밖에는 없다. 가엾은 우리 국민을 위해서, 그리고 그 자신의 당당한 오늘과 슬프지 않은 퇴임 후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