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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시대의 집단폭력

능산선생 2006. 2. 2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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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만 농민이라지만 전체 인구 비율로 보면 7%밖에 되지 않는다. 쌀 수입을 반대하는 농민들은 찬성하는 나머지 93%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쌀 수입 개방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어떤 네티즌이 보낸 댓글이다.

얼핏 보면 7대 93이라는 수치는 객관적 사실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93%의 국민이 모두 쌀 개방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말없는 다수 국민들은 쌀 수입 개방을 어쩔 수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다수의 의견에 승복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이므로 농민들은 다수결 원칙에 따라 불만이 있더라도 쌀 수입 개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전혀 흠잡을 데 없이 합리적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엄청난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언제까지나 추곡수매를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무역장벽이 사라진 WTO 체제 하에서 값싼 외국 쌀을 사먹고 공산품을 수출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주장에 이의를 달기는 힘들다.

농민, 소수인데다 서민 축에도 못 끼는 왕따 신세

농민들의 다소 과격한 시위는 마구잡이식 몸부림을 보는 듯한 안쓰러운 느낌을 준다. 사실 대부분이 6, 70대 노인들인 농민은 조직력도, 논리적 설득력도 빈약한 소수집단에 불과하다. 게다가 농민의 딱한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줄만한 힘 있는 후견자도 없다.

서울의 힘 있는 언론들은 2%의 부동산부자들을 ‘세금 폭탄에 전전긍긍하는 불쌍한 서민’이라고 강변하면서 부동산 세율을 낮추라고 난리를 치지만, 7%의 농민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농민은 이제 ‘서민’ 축에도 끼지 못하는 집단 왕따의 대상인 것이다. 도회지에 나가 사는 농민의 아들 딸들도 아파트 시세나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에만 정신이 팔려 쌀농사가 어찌 되든 관심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막다른 곳에 내몰린 농민들은 과격한 시위나 분신, 자살로 피맺힌 절규를 토하지만 기다리는 것은 경찰의 방패와 물대포 뿐이다. “폭력 시위나 벌이며 억지를 부리는 농민들은 물대포를 맞아 싸다”고 젊은 네티즌들은 냉랭하게 쏘아붙인다.

그러나 웬일인지 나는 이러한 7대 93의 논리에서 힘없고 초라한 7명의 시골 아이들을 힘 있고 덩치 큰 93명의 도시 아이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조롱하면서 집단폭행을 가하는 학교폭력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된다.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공교롭게 최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들은 나를 이러한 황당한 엽기적 상상력으로 몰고 간다.

국익과 애국심을 내세운 인터넷 폭력 극심

며칠 전 이곳 대구의 전시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권탄압을 형상화한 한 작가의 작품을 ‘기분나쁘다’면서 찢어버리고도 당당한 관객이 있었다. 그리고 면접시험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히틀러를 꼽으면서 국력을 증강하기 위해서는 독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여고생도 있었다.

다수의 이익-그것은 흔히 국익과 애국심으로 포장된다-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고 당연하다는 논리에 사로잡혀 약자인 소수를 왕따시키고 비웃고 협박한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 대한 폭력적인 표현이 난무한다.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댄 언어의 공격성과 폭력성에서 나는 초정밀 초고속 정보통신(IT)시대 국가주의의 섬??한 살기를 느끼고 전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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