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기적」

능산선생 2006. 7. 10. 08:04
728x90
반응형
 

 

김원섭 infinew1@hanmail.net

                            

 동양에는 일찍부터 청빈(淸貧)사상이 만연(蔓延)했다. 왕연(王衍)은 위진시대(魏晉時代)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사람인 왕융의 종제로서 요직을 역임했으나 오로지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내며 금전에 관한 말은 입에 담기조차 꺼려했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남편을 시험하려고 하녀에게 명하여 침대주위에 돈을 좍 깔아 놓게 하였다. 잠을 깬 왕연은 『아도물(阿堵物)을 집어 치워!』라고 고함을 쳤다. 「아도」는 당시 속어로 「이것」이라든가 「이」의 뜻인데 돈이란 말을 입에 담기도 싫어하는 왕연이 『이 물건을 치우라』고 말한 것인데 이 후 금전을「아도물」이라고 지칭하게 된 것이다.

 돈을 벌려면 양심과 인격을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누가 돈을 모았다고 하면 으레 부정과 협잡이 개재한 것으로 생각하고 돈을 운운하고, 돈을 모으려고 분망한 사람을 은연중에 멸시해온 것이 동양인의 금전에 관한 속성이었다.

 그러나 미국사회에서는 돈에 대한 관념이 우리와는 다르다. 미국에서는 정직하게 일하고 근면한 사람은 누구나 돈을 모았다. 돈을 모으지 못한 사람은 근면과 정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돈은 노력의 산물이요, 돈과 덕(德), 돈과 인격, 돈과 양심은 모순된 것이 아니고 일치하는 것이 그들의 재물관(財物觀)인 것이다. 그들은 돈을 모으면 교회에 기부하거나 사회사업에 쾌척한다. 이러한 자선행위를 통해 사회적 위신을 확보하고 부의 축적에 착취의식이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인은 부호를 볼 때 근면, 창의, 정직, 기업정신, 정당한 노력의 결정(結晶) 등을 결부시킨다. 경제적 부와 윤리적 덕(德)의 일치를 결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고 돈을 모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저들의 생각이 다소 다른 것 같다.  우리나라의 어떤 재벌들처럼 돈 버는 목적이 감투를 쓰고, 국회의원이 되고, 미인 첩을 남 몰래 거느리는 데에 있지 않다.

 미국에는 자동차 왕 포드, 강철 왕(鋼鐵王) 카네기, 록펠로 등 많은 재벌들이 미국 국민들에게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커다란 봉사를 해왔는데 이들 모두는 한결같이 돈은 벌기보다 옳게 쓰는 게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돈 제대로 쓰는 게 버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며 자선기금으로 374억달러(약 37조원)를 내 놓는 미국인이 있어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로 보도하고 있다. 위런 버핏(75)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기부약정식에서 한 발언이 또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나는 매우 운이 좋아 많은 재산을 모을 수가 있었다. 재산을 기부하기로 한 것은 이 같은 행운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라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석투자」로 유명한 버핏 회장은 재산의 85%인 374억 달러를 자선기금으로 내어 놓기로 하고, 이중 310억달러를 게이츠가 운영하는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키로 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런 기부는 게이츠 재단의 현 자산인 291억달러를 웃도는 액수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단연 최대 규모이다.

 유산을 자식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유산상속을 둘러 싼 집안싸움을 보아온 우리에게 많은 충격을 주고 있다.

 돈을 「아도물」로 여길 일이 아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지만 우리는 지금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기적을 보고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