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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수첩이여!그대는 ‘6m비밀’갖고 ‘제2 촛불집회’ 誤判”

능산선생 2010. 8. 2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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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수첩이여!그대는
‘6m비밀’갖고 ‘제2 촛불집회’ 誤判”
“언론자유, 공공재”‥‘美언론,민주주의.공개성.국익 공동목표’
2010년 08월 25일 (수) 12:06:27 편집인 편집국장 김원섭 infinew1@newsplus.kr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누구나 군중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군중'이다. 광기, 패닉, 공포, 희망 등 집단적 심리상태에 빠질 수 있고, 군중심리의 특성들을 획득할 수 있다. 아무리 훈련을 받은 지식인이라도 일단 집단 정신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지적 재능과 개성이 약해진다. 』

이는 ‘군중심리’를 연구한 프랑스의 귀스타브 르봉이 한말이다. 이같은 군중의 심리를 잘 이용한 집단이 바로 사회주의자들이다.

우린 지난 2008년 ‘광우병’이란 괴담이 공중파를 타면서 일부 진보세력들이 ‘군중의 심리’를 적극 활용,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을 봤다. ‘천안함 침몰사태’에서도 볼수 있듯이 지금 한반도정세는 살 얼음판을 걷고 있는 가운데 이같은 행위는 옳지 안다고 본다.

죽어가는 미국 소 한 마리를 공중파로 통해 방영, ‘광우병 공포’로 몰아넣었던 MBC가 ‘4대강 사업’을 또 한번 군중심리를 이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논란이 많았던 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이 방영됐으나 새로운 접근을 내세웠던 것과는 달리 이전의 주장을 되풀이하거나 근거도 부족한 일방적인 의혹을 제기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는 과거 PD수첩이 자행했던 ‘광우병 왜곡보도’편의 제목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주요 내용은 그 전에도 몇번이나 우려먹었던, 4대강 사업이 홍수피해 방지와 수자원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으며 새로운 보도의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익명의 제보자의 이메일이었는데, 이는 정부가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결국은 4대강 사업을 대운하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맹목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국토부의 반박자료에 따르면, 실제로는 전체 4대강 사업 구간의 75%가 수심 1~2m 또는 3~5m인 것을 정확하게 시청자에게 알려주지 않고, 4대강 사업 구간 전체가 6m인 것처럼 단정적 제목을 내세워 인터넷 보도까지 미리 했었는데, 실제로는 낙동강 일부 구간(61%)만 6m인 것으로 확인 한것에 불과하다.

   


결국, PD수첩의 ‘4대강 수심 6m’는 제목부터 사실 관계를 왜곡한 것으로 볼수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PD수첩의 주장대로 6m 수심에 맞는 흘수를 가진 선박이 1척 입항하려면 다음의 5가지 시설과 서비스가 갖추어져야 한다고 한다.

우선 최적 규모의 접안시설을 갖춰야 하고 크루즈 선박 본선을 접안시설까지 예인할 선박 2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선박이 정박할 동안 배에 필요한 급유, 급수, 식자재, 선박수리, 분뇨처리 선박 등 항만운송 부대사업이 들어서야 하고 출입국, 세관, 검역, 선박입출항을 위한 관제시설 등 정부서비스도 갖춰야 한다.

이와함께 최소한 선박이 안전하게 항행하기 위하여 항로표지시설, 도선(PILOT), 그 전에 선박이 입출항 하기 위한 해도 등 필요하다.

PD수첩 방송내용 처럼 ‘준설 = 운하'라고 주장하려면 이런 조건이 있는지를 입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낙동강 유역에 이런 조건들은 전혀 구비되지 않았는데도 일방적인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과연 그 저의 가 무엇인지 의심케 하는 행위이다. 국토부는 PD수첩 방영 이전, “방영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고 충분한 반론이 보장되었는지 검토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방송될 경우 정정보도 요청 등 법적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PD수첩은 08년 광우병의 위험성을 과장하고 일부 인터뷰를 허위로 조작하거나 왜곡하여 온 나라를 뒤흔든 ‘광우병 촛불시위’를 촉발시킨바 있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악의적 조작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PD수첩은 국민을 상대로 왜곡 과장보도를 통한 선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4대강 편 방송을 놓고도 ‘익명의 제보자’의 검증되지 않은 제보내용만을 가지고 정부 깎아내리기를 시도했는데 MBC 사장의 방송 보류 결정이 내려지자 좌파매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현 정권의 언론 탄압, 국민의 저항’ 운운하며 마치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는 것처럼 과민반응을 보였다.

과연 PD수첩의 이번 4대강편 보도와 이에 부화뇌동하는 좌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되묻고 싶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악의적인 왜곡과 조작, 선동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그 뒷면에 가려져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아! 4천 년 강토와 5백 년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 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중략>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기자 이래 4천 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 동포여 !”

   

황성신문 발행인이었던 장지연 선생이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문’에 쓴 사설의 일부다. 사설의 주된 내용은 침략의 앞잡이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난하고 을사오적을 우리 강토와 국가를 남에게 바치고 백성들을 노예로 만들려는 ‘매국의 적(賊)’이라고 비난하면서, 이 조약은 고종황제가 승인을 거부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 논설 외에도 잡보(雜報)란에 ‘오조약청체전말'(五條約請締顚末)’이라는 제목으로 조약을 강제 체결하게 된 정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 비분강개의 논설이 실린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은 평소보다 많은 1만 부가 인쇄되어 이른 새벽에 서울 장안에 배포되었고, 신문이 배포되자마자 장지연은 같은 날 오전 5시 한양골의 사옥에서 체포되어 경무청에 수감되었다. 또한, 인쇄기계와 활자가 강제로 봉인되었고, 마침내 무기 정간령이 내려졌다.

104년이 흐른 지금 장지연 선생의 글이 다시 떠오른다. 종이 신문에 이어 온라인 매체, 무가지 신문 등 다양한 언론시장을 형성, 무수히 많은 정보를 쏟아내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언론의 자유는 공공재다. 그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나 우리를 억압했던 언론이나 누구나 평등하게 누리는 재원인 것이다.

이 공공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사회가 올바른 길을 갈수 있다. 이런 예는 언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된 미국 언론계에서도 공공재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예가 지난 7월 25일 미국 뉴욕 타임스, 영국 가디언, 독일 슈피겔의 웹사이트는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수행과 관련된 20만 페이지 분량, 9만2201개의 비밀 문건과 해설 기사를 올린데서 볼수 있다. 연합군이 민간인을 살상한 144건의 사례를 포함해 2004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전쟁 수행의 실상이 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비밀 문건을 이들 언론사에 제공한 것은 위키리크스(WikiLeaks)라는 정부·기업 불법 행위 고발 사이트였다.

그러나 미국 언론의 신중성이 드러난다. 뉴욕 타임스는 위키리크스로부터 자료를 건네받고 한 달 동안 내용을 검증했다. 뉴욕 타임스는 문건의 대부분이 ‘1급 비밀’이 아니라 ‘2급 비밀’이라는 점을 확인했고, 국가 안보를 저해할 수 있는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와 마찬가지로 가디언은 전투병력이나 정보원의 신원·위치, 첩보 수집 기법과 같은 내용은 자진해 보도하지 않았다.

여기서 볼수 있듯이 정부와 언론이 민주주의·공개성·국가이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이용하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한 셈이다. 언론사들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정부의 정책 궤도 수정에 필요한 여론 환경을 형성했다고 볼수 있다.

이제 선진국인 미국의 언론에서 볼수 있듯이 MBC는 공공재의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국민들도 공중파의 보도를 보고 불처럼 저항하지 말고 냉정한 마음으로 보도내용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 우리는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는 일에 익숙하다. 어떤 사안이 생기면 나라 전체가 들썩거린다. 인터넷은 불이 붙는 순간부터 뜨거워질 때까지의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했다. 아주 지엽적이고 작은 사건도 여기저기서 불쏘시개를 갖다대면 금방 큰 불이 되어 활활 타게 된다.

그러나 열정은 아름답지만 분별력이 없으면 위험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것 역시 아름답지만 논리를 결하면 위험하다. 우리는 조금 덜 뜨거워지는 대신 조금 더 합리적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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