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아내와 딸, 여학교의 학생들 등 주변의 시선에 시달리던 최석(김진규)은 좌절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시베리아로 떠난다. 이 소식을 듣고 서울로 찾아온 정임(남정임)은 시베리아로 최석을 드넓은 하얀 눈위에 각혈을 하면서 착아가지만 그는 병마로 세상을 뜬다. 그의 유적을 받들면서 정임은 그곳에 남는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영화해 1966년에 개봉한 ‘유정’의 줄거리다.
결핵은 공기로 전염되는 질환이다. 즉, 상당히 넓은 공간이라도 한 명의 결핵환자가 기침 등을 하여 결핵균을 배출하기 시작하면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전염시켜 결핵 감염을 유발할 수 있는 공포다. 이러한 사실에서 결핵은 매우 중요한 보건학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결핵은 먹을거리가 모자라던 가난한 시절 영양이 결핍해지면 잘 걸려 후진국형 질병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오늘날 여전히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어서 적극 대처해야 하는 무서운 질병이란 점에서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전문가들은 결핵환자가 꾸준히 발생하는 이유를 고령화와 불규칙한 식생활, 무리한 다이어트로 손꼽기도 한다.
오늘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결핵균까지 출현하고 있다. 결핵 퇴치가 인류의 절대적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말 기준 전 세계 결핵 환자 수가 960만 명에 이른다. 전 세계 환자 수만 파악해 봐도 결코 가벼이 여길 질병이 아니란 점은 확연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도 연간 약 3만 명의 환자가 새롭게 발병하고 2천200여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ECD회원국 가운데 발생률과 유병률, 사망률 모두 1위다.
특히 국내 일부 지역 쪽방 거주자의 결핵 발생률이 일반인보다 12배 높은 것으로 드러나는 등 쪽방 거주자들이 결핵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결핵을 과거의 질환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결핵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까지 젊은 연령층에서 사망의 흔한 원인이며, 전 세계 인구의 약 30%를 넘는 20억의 인구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에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결핵 후진국’으로 불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결핵 발생률 1위다. 2017년 인구 10만명당 결핵 발생률은 70.4명이었다. 이는 OECD 평균 11.1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세계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병은 바로 ‘결핵’이었다.
1944년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에 바탕을 둔 정치 우화소설 『동물농장 Animal Farm』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던 조지 오웰은 지병인 결핵으로 입원 중 걸작 『1984 Nineteen Eighty Four』(1949)을 완성하였다. 『1984』는 현대 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도달하게 될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공포의 미래소설이다.
1928년, 미국인 선교사 셔우드 홀은 황해도 해주에 ‘결핵 환자의 위생학교’를 세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결핵환자 전문요양시설이었다.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자 셔우드 홀은 이름을 ‘해주 구세요양원’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폐결핵환자 전문요양기관으로 운영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크리스마스실이었다.
불과 25여 년 전만하더라도 매년 12월이 되면 대한결핵협회에서는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여 결핵 예방 및 결핵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주곤 하였다.
3월24일은 ‘세계 결핵의 날 및 결핵 예방의 날, 환자가 해마다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새롭게 환자가 생기는 만큼 완치에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되는 것이다. 국내 인구의 30%가량을 결핵 보균자로 추정할 정도라고 하니 무서운 질병임이 틀림없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 19’의 공포의 도가니에 갇혀있다. 그러나 확률로 따지자면 지하철을 타다가 코로나 19에 감염될 확률은 결핵에 걸릴 확률보다 훨씬 낮다. 대통령은 우리나라 방역을 세계최고라 칭찬하지만 대한민국은 세계 최상위권의 결핵 유행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결핵이 무서워 마스크를 쓰고 다니진 않는다. 왜? 그것은 오래되고 익숙한 질병과 새롭고 낯선 질병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차이에 기인한다.
결핵은 골치 아픈 병이지만 결핵에 대한 인류의 지식은 방대하다. 우리는 결핵균과 결핵이라는 감염병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결핵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지도 지겹도록 잘 알고 있다.
결핵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퇴치해야 할 질병이다. 무엇보다‘후진국형 질병’이란 인식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일단 걸리면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약만 제대로 복용해도 완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염의 공포는 환자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낳는다. 공포는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유지된다. 언론의 주특기는 ‘공포 팔기’다.
폐결핵과 코로나19 감염병과 그 공포에 면역력을 길러주는 건, 정확한 정보에 기초한 민주적인 소통과 긍정과 희망이라는 백신이다.
결핵에 걸린 니체는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 갈 수만은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며 고통을 견디는 것에서 만족하지 말고 고통을 기쁨의 재료로 하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