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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이명박 지지’뒤엔 김현철 있다.

능산선생 2007. 4. 11.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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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이명박 지지’뒤엔 김현철 있다.
김현철&전병민,이명박 대선위해'민주산악‘재건 최전방 뛴다
김원섭 기자 / 2007-04-11 04:12:19

▲ (사진=권희정 기자) ⓒ2007 CNBNEWS
문민정부시절 소통령으로 불렸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씨가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대권 책사’인 전병민씨도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일간 청와대 수석’ ‘YS 한명회’로 통하는 전병민씨는 지금 정치컨설턴트로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으로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지난 9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통일 대통령’을, 정주영후보가 ‘경제대통령’을 내세웠을때 김영삼 후보에게 ‘개혁 대통령’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전략을 제시, 성공했다.

그래서 ‘전병민을 짘보면 대권의 향방이 보인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87년 대선에서도 노태후보의 중간평가공약을 개발, 성공했다.

그동안 정치무대에서 사라졌던 김현철씨는 최근 다시 정치적 활동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대선후보중 이명박 전서울시장을 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지병으로 자택에 머물고 있는 최형우 전의원을 비롯, 김명윤 국회부의장, 서석재, 이원종, 문정수, 황병태, 황명수, 홍인길등 YS계보 전의원들도 이명박 전시장 밀기에 나설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YS계가 이명박 대통령만들기에 총동원될 태세이다.

여기에 이기태 전의원도 이 전시장 캠프에 발을 담그고 있어 부산 경남권에서 승리의 교두보 확보에 한발 다가섰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 제조기 전병민 활동 돌입

그러나 서청원 전의원이 박근혜전대표의 지지를 표명한데 이어 김덕용 의원도 박 전대표의 지지쪽으로 기울고 있어 일부 YS계가 적과의 동침에 들어갔다. 이에 반해 YS계인 박관용 전국회의장은 아직 누구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김영삼 전대통령이 최근 이명박 전시장을 공식적으로 지지표명한 것에 대해 김현철씨가 적극적으로 설득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전시장과 고대동문인 문정수 전부산시장, 이원종 전정무수석의 가교역할도 작용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전시장과 김현철측과의 빅딜설이 제기되고 있다. 즉, 내년 총선에서 김현철씨의 공천거래가 있다는 것이다.

김현철씨는 지난 2004년 총선때 한나라당의 공천을 신청했지만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의원으로부터 거부당했는데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박 전대표와의 앙금이 싸였다고 보고 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이명박 지지를 선언한후 민주산악회 조직을 다시 가동에 들어갔으며 김현철씨도 그동안 가동을 중단했던 사조직에 대해 풀가동에 들어갔다.

▲ (전병민) ⓒ2007 CNBNEWS
YS계인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을 도외시하고 당원들만의 선택에 의해 후보를 뽑는다면 상대가 있는 선거에서는 필패 할 것"이라면서 "만약 열린우리당이 국민이 참여하는 경선을 실시하고, 한나라당이 당원 중심의 경선을 하면 결국 우리당이 이길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선택을 압박했다.

김현철씨가 이전시장의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뛰고 있는 가운데 지난 92년 대선에서 김영삼 전대통령 만들기 1등공신인 민주산악회의 조직 가동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산악회 對 녹색회 대결

지난 92년 6월 16일. YS는 최형우를 상도동 자택으로 불렀다.

"최의원, 우리가 대통령후보자리를 따내기는 했지만, 시작은 이제부터요. 어차피 민정계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발벗고 뛰어주지 않을 거요. 당신이 민주산악회를 맡아줘야겠소. 난 이번 선거를 민자당이 아닌 당신 중심의 산악회로 치를거요."

당시 정무장관직을 내놓고 방황하던 최형우는 YS의 제의에 군 말없이 "예"라고 만 했다.
최형우가 상도동 내 1인자를 굳히는 자리였다. 최형우는 마침내 이민우 김명윤에 이어 민주산악회(민산) 3대회장에 취임했다.

5공시절 민주화투쟁을 이끌어냈던 민주산악회는 최형우가 회장에 취임하자, 조직보강에 착수하며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뛰었다. 최형우는 조직보강을 위해 박태권 박종률 서청원 등을 만나, 조직을 무한대로 확장시키기로 결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최형우는 "30년 전우를 모두 모아, 민자당 이상의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민산 조직은 부회장단과 본부장 중심체제로 확대 개편됐다. 부회장으로는 황명수 김덕룡 서석재 강인섭 황병태 김동규 박종률 이우태 등이 선임됐으며, 박태권을 본부장으로 백영기 박정태 오사순 등이 부본장을 맡았다. 여기에 시도협의회장을 인선해 92년 10월 민산 회원은 200만 명으로 증가됐다.

민산이 예상외로 조직을 확대해 가자, YS는 또 다른 비선조직을 만든다. 실무작업을 맡은 사람은 김무성과 김현철.

이후 김무성 김혁규 김영춘 김현철 등이 모여 "나라사랑실천본부(나사본)"라는 이름을 지어, 정식 발족하기에 이른다. 사실 YS는 민산과 나사본을 하나로 통합해, 최형우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기로 결심, 성공했다.

와해됐던 민주산악회가 지난 98년 김영삼 대통령이 최근 새삼스럽게 ‘민주산악회 재건’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온 것도 김대중 후보가 아태재단 창설-지방선거 승리-신당 창 당의 3단계를 거쳐 ‘야금야금’ 정계복귀의 길을 밟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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