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로 후 이명박 정부 들어 첫 조문특사가 서울와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후 전개되는 남북한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남북간 화해의 무드가 전개될 경우 가을 해바라기가 활짝 피는 가을에는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언제 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간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15 경축사에서 밝힌 '한반도 신평화구상'처럼 북한이 원하는 남북관계 개선의 폭과 깊이, 속도를 가늠할 수 없지만 물꼬가 터진 대화국면은 우리가 주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펼쳤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은 남북화해의 새장을 열고 있다고 외신들도 보도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유엔의 제재결의와 한미공조가 깨지지 않고 원칙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처럼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살려 남북관계를 상생.공영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대통령도 지난 23일 북한조문 특사를 만난자리에서 "핵문제를 미국하고만 이야기 하지 말고 우리하고 하자"며 "우리가 나서면 쉽게 풀릴 수 있다"고 말해 남북정상회담의 첫 의제는 북핵으로 못 박았다. 특히 청와대는 북핵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정상회담 제의는 '레토릭(수사)'가능성이 높다고 판다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북한이 취해온 행동에 대해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북한이 취해온 행동을 면밀히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 5월의 2차 핵실험에 이어 지난달 4일까지 중단거리 미사일을 무더기로 쏘아 올리며 한반도를 긴장상태로 몰아넣었지만 8월 들어 갑자기 '온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4일 클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이 전환점이 됐다는 관측이다.
이어 13일 억류 개성공단 근로자 유성진씨 석방, 17일 금강산, 개성관광 재개 등 현대그룹과 북한간 5개 합의안 발표, 21일 북한지역 출입, 체류 제한 해제, 23일 북한 특사조문단의 이명박 대통령 예방에 이어 그동안 오지 말라고 했던 미국의 스티븐 보스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에게 방북 초청을 했다. 그리고 추석때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리며 또 억류중인 연안호 선원들도 석방됐다.
그러나 최근 이런 북한의 변화의 직접적 원인은 북한의 '돈줄'을 막은 유엔결의안1874호가 직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제적인 공조로 북한의 자금이 사실상 막히면서 돌지 않자 지금처럼 북한이 협상 쪽으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이런 국제적 공조가 가능했던 결정적 요인은 중국의 동참을 들 수 있다. 이제껏 제재가 '너무 지나치다'는 이유로 거부를 행사했던 중국이 미국의 지속적인 설득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끈질긴 양자회담 요구에도, 미국이 6자 회담의 틀을 고수하는데는 바로 이런 중국과의 협조관계 구축이 북한과의 협상 성패를 가름 짓는 중요한 관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보다 긴 시각에서 볼 때 최근 북한의 유화 제스처는 전형적인 행태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북한이 지난 20년간 무력도발과 화해 무드 유발을 동시에 하는 '갈등과 협력의 이중전략'을 구사해 온 사실이 최근 고려대 강승규 박사가 쓴 학위 논문 '탈냉전기 남북한 갈등과협력에 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극명하게 입증됐다.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네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갈등-협력을 동시에 - 몸값 올린 뒤 대화유도 전략 고착화"라고 할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1999년에 북한 경비정의 북방 한계선 침범으로 제1차 연평해전이 일어난 뒤에도 현대에 금강산 시설의 30년 독점사용권을 허가하는 등 북한은 갈등이 극도로 고조될 때도 거리낌 없이 손을 내민다.
두 번째로 "갈등유발 뒤 돈 벌어 - 10대 도발사건 후 4개월 이내 경협 재개"다. 지난 1996년 북한 잠수함의 동해 침투 사건,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미사일 발사, 2006년 1차 핵실험 등 북한의 10대 주요 도발사건 이후 경제협력 활성화 여부를 조사한 결과 도발 1달 또는 4개월만에 남한 정부의 특별한 제재 없이 다시 경제협력이 활발해졌다.
셋번째는 "북은 도발, 남은 협력 - 남, 관계개선 집착... 도발후 보상 반복"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년간 북한은, '도발하면 남한이 경제협력이나 경제적 지원을 추진하는 공식이 성립된 것이다.
네 번째는 "김정일 집권후 심화 - 경제난 타개 위해 군사위협 카드 사용"이다. 논문은 김정일 집권시기가 김일석 집권기 보다 갈등지수가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일성 집권때까지 안정적이었던 중국, 소련과의 관계가 김정일 집권 이후 악화돼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경제지원을 얻기 위한 카드로 군사적 도발을 사용해 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그간 보여온 일관된 '이중행태'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특히 남북관계 개선의 근본적 걸림돌인 핵 문제에 대해서 요지부동이 라는 점을 볼때 명확해진다.
아무리 겉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금강산 개성 관광을 재개하고 정상회담을 거론하는 등 어떤 방법을 취하더라도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가 되지 않는 이상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은 불가하다.
대대적인 '대남 유화공세'를 펼치고 있는 북한을 보면서 얼핏 남북관계가 다시 정상 궤도에 들어선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이에따라 우리사회 일각에선 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시각에서 정부와 대북정책을 비판하며 몰아붙이는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한다.
이런 판단은 앞서 말했듯 '착각', '착시'에 지나지 않음을 명확히 하고 싶다.
참고로 북한의 '조선노동당규약'의 지상과제는 남한의 적화 통일이고 북한이 이것을 폐기하고 포기하지 않는한 변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건데 지금 북한의 유화 제스처는 이제껏 수십년을 그래왔듯 손 내밀었다 뒤통수치는 격인 전형적인 강경, 양면 전술의 또 하나일 뿐임을 잊어선 안된다.
그래서 외국 언론들도 북한의 행동에 대해 경계하는 보도를 내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로 197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인터뷰한 세스 립스키는 최근 기고문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김 전 대통령이 북한에 수억달러를 건넸다는 스캔들이 터지자 한국인들은 햇볕정책을 실패한 것으로 폐기했다"고 썼다. 그는 "이 사실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혁명이 이뤄지기도 전에 대화부터 하려는 북한 등 다른 정권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안보리 한 외교 소식통도 "안보리는 북한의 '제스처'보다는 실질적인 긍정적 행동을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햇볕정책과는 확연히 다른 대북 접근 방식으로 '페러다임 시프트'를 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MB정부는 과거 정부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앞세워 국제관계의 '룰'을 뒤로 한 채 북한과의 무조건 대화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남북관계도 내부 문제란 특수한 관계의 틀을 벗어나서 국제적인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고 본다.
'핵은 핵이요' '통일은 통일이요'라는 공통된 문제를 다 해소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가는 힘을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