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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학자,‘1번’조작 밝히면 노벨화학상?”

능산선생 2010. 8. 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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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학자,‘1번’조작 밝히면 노벨화학상?”
“16세기 동인.서인 당파싸움 임진왜란 불러왔다는것 교훈삼아야”
2010년 08월 03일 (화) 16:23:26 편집인 편집국장 김원섭 infinew1@newsplus.kr
   

화학은 물질의 성질, 조성, 구조, 변화 및 그에 수반하는 에너지의 변화를 연구하는 자연과학의 한 분야이다. 화학의 주된 관심은 물질이 왜 특정한 형태를 가지며, 이러한 성질을 나타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어떻게 서로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물질을 형성하며 화합물이 분해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일관성 있는 설명을 하는 것이다.

물질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화학자들은 많은 실험을 통해 물질의 연속성과 변화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론을 발전시켜왔다. 현재에는 원자(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들이 질서있게 모여 크고 작은 분자를 이루며 이러한 원자나 분자가 재배열됨으로써 물질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화학은 격렬한 반응으로 이어지는 물질들간의 상호작용의 변화뿐만 아니라 물질의 원자조성과 구조에 관한 연구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화학은 천연에 존재하는 물질의 응용뿐만 아니라 새로운 물질의 창조와도 관계가 있다. 인류가 가장 먼저 알게 된 화학적 현상은 아마도 불에 의한 연소 현상일 것이다.

이러한 화학은 학문이며 이론이다. 이래서 가설이 존재할 수 없다. 외국서 학위를 받은 석학들이 ‘1’이라 숫자를 갖고 고스톱을 치고 있다. 즉 천안함 어뢰 1번 글씨.

이와관련,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 8월2일 발표한 ‘천안함 어뢰 1번 글씨 부위 온도 계산’이라는 논문에서 “1번 글씨가 폭발 때 고열의 화염에 타버렸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송교수는 “1번 글씨가 씌어 있는 디스크 부분은 초기 온도에서 단 0.1도도 올라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동안 반정부 선동에 열을 올려온 일부 좌파 학자들은 “폭발 직후 어뢰 추진부 뒷부분의 온도가 섭씨 수백도까지 올라 1번 글씨에 쓰인 마커펜 잉크는 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는 “마커펜 글씨가 남아있는 어뢰 내부 온도는 최소 섭씨 325도 이상 올라갔을 것”이라며 마커펜 성분의 끓는점이 78.4~138.5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폭발 뒤 마커펜 흔적이 남을 수 없다"는 논리를 강하게 제기했다.

송교수는 이러한 논리에 대해 “열역학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세운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오류투성이”라고 지적했다. 송교수에 따르면 이 교수 등이 저지른 첫번째 오류는 수중 폭발 상황을 대기 중 폭발 상황으로 가정한 것이다.

이 교수는 “TNT 250kg 짜리 어뢰 폭발시 방출된 열의 13%만 있어도 어뢰 온도는 150도까지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송교수는 “폭약이 공기 중에서 터지면 주변 공기를 집어삼키며 충격파가 전진하기 때문에 열이 쉽게 전달되지만 수중에선 안 그렇다”고 설명했다.

폭발 즉시 폭약은 가스 덩어리로 변해 순간적으로 팽창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변의 물을 밀어내느라 에너지를 크게 소모한다는 것이다. 송교수는 “이 과정을 거치며 폭발 직후 3003도였던 버블의 온도는 0.1초후 28도로 급속 냉각된다”고 설명이다.

송교수는 자신의 논문 내용에 대해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동료 교수 26명으로부터 ‘과학적으로 옳다고 본다’는 추인을 받았다고 한다. 송교수는 논문을 카이스트 ‘열전달 연구실’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했으며, “전문가라면 누구든 내 연구를 검토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다.

1번 글씨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나온 만큼, 그간 ‘1번 조작설’을 줄기차게 외쳐온 좌파 교수들 및 좌파 언론들은 송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공개토론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특히 좌파들이 주장하는 '1번'조작설을 화학적으로 밝히면 노벨화학상을 받을 수 있다.

지금 ‘1’을 놓고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501년전이 생각난다. 그당시 조선에서는 1590년 3월 황윤길, 김성일을 파견, 조선침략에 대한 동향을 파악토록 했다. 황윤길은 침략할 것이라고 보고 했고 김성일은 침략할 조짐이 없다고 보고 했다. 선조는 김성일의 말만 듣고 적을 맞을 준비를 소홀히 하였다. 2년 후 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황윤길의 말을 믿지 않았음을 크게 후회하였다고 한다.

황윤길은 서인, 김성일은 동인으로 이같은 21세기 ‘당파싸움’으로 한반도를 다시 위기국면으로 몰아넣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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