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여는 세상-“지금 노동계, 52년 散華한 전태일 열사를 부른다!”➬‘나눔 노동학’,與民同樂

능산선생 2022. 11. 13.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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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간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곁으로"

이는 지금으로부터 52년전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대변한 전태일씨의 글귀다. 그는 인권이 유린된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를 대변한 인물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노동자의 삶과 질이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고 노동운동의 선진화를 맞았다.

노동은 창조적 행위이라고 할수 있다. 노동을 함으로써 노동의 대상에다 인간의 생각이나 의지, 나아가 사상을 구체화시켜 무언가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노동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기쁨을 때때로 느낀다. 이것은 결국 우리들 각자의 존재의의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지금 노조활동은 노동자를 위한 노조활동이 아니라 일부 계층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로 변색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 정치성향까지 가미하는 노동운동을 전개, 정치노조로 탈색하고 있다. 겉은 노조지만 속은 가 가득찬 양의 털을 쓴 늑대같은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그러면서 일부 노조는 자녀들을 특별 채용하는 직장 세습화를 만들고 있으니 이게 북한의 노동당과 다를바 없지 않은가? ‘현대판 음서제등 이런 행위를 하는 민주노총민주자를 빼어야 마땅하다.

눈앞의 기름진 음식만 즐긴 뚱뚱해진 고양이 같은 행위에 대해 노동자와 국민들이 등을 돌리는 것이다. 귀족노조의 제 밥그릇 챙기기 획책은 전 국민적 분노만 살 뿐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이에 환멸을 느끼고 노조를 탈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이 노동운동을 보는 시선이 예전과 달라지면서 강경 투쟁에 대해 냉정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시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유연한 노동운동 목표와 수단이 선택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52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1인당GNP2만달러에 육박하는 가운데 우리 노동계는 전태일의 뜻은 뒤로 한 채 자기들만의 득을 위해 투쟁하는 노조로 변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노조는 현장 조직과의 끈끈한 연대와 결합을 가져오지 못한채 강성 투쟁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지금의 노동운동은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지나친 정치 지향성 때문에 일부 단위노조가 탈퇴를 하고 있는 시기에 민노총은 이 같은 행위를 접고 노조원의 실용적 이익을 위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의 지평을 열어야 할 것이다.

또 앞으로는 단일 세력의 노동운동이 아닌 각 세력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시대 흐름에 맞는 노동운동이 등장하고 있는 때에 노동운동의 청렴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를 섬기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노동운동을 지향할 때만 민노총은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 같은 행위를 접고 노조원의 실용적 이익을 위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의 지평을 열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단일 세력의 노동운동이 아닌 각 세력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시대 흐름에 맞는 노동운동이 등장하고 있는 때에 노동운동의 청렴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를 섬기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노동운동을 지향할 때만 노동단체는 살아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해야 임금 안정을 기하고 산업구조조정을 원활히 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양대 노총은 깨달아야 한다.

고용시장에서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 오늘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유목민이 되어가듯이 난민수용소에서 미래사회의 모습을 본다. 난민수용소는 유동적 현대의 삶의 패턴이 시험되고 예행되는 실습장이다.

증오상업주의가 당파싸움을 낳고 정치 환멸을 재생산한다. 따라서 빈곤이 고착화되면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다. 빈곤탈출과 계층 상승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면 경제 활력도 급감한다. 성장잠재력도 물론 떨어진다.

그래서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명분으로 사회와 호흡해야 한다. 노동이라는 짐을 분담하고 여가라는 이득을 나눠가짐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최대한도의 복지를 누리는 공동체를 꿈꿔야 한다.

노동계가 근로자들의 행복보다 자신의 입지나 정치적 영향력을 챙기는데 급급하면 노동의 미래는 나아질 수 없다. 노동계는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세계화, 기술혁신, 인구구조의 변화등 노동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요인을 해결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정치활동에 치우치기보다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적극 활용해 실질적인 방향을 찾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행복의 특권을 쓴 긍정심리학자 숀 아처는 현대사회에서 최대 경쟁력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행복지수가 높아야 업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잡으려는 행복, 하지만 많은 이에게 행복은 그림의 떡처럼 보인다.

지난 90년대 중반 우리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 아버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김정현씨의 소설 아버지의 지위를 위해 나눔의 노동학으로 與民同樂의 길을 열때다.

이를 위해 양대노조는 귀족노조의 이미지를 촛불로 태워버리고 산과 길거리를 헤메고 있는 동료자들에게 이밤이 다가도록의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는 정태춘의 촛불이 아닌 바람아 멈추어라~촛불을 지켜다오의 조용필촛불로 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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