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 여는 세상-“아리랑~아라리요!!”➫750만 한인 삶,‘대한민국 窓’

능산선생 2023. 10. 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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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1902, 서구 열강의 이권 개입 경쟁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계속되는 가뭄으로 혹독한 굶주림이 지속됐다. 이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은 하와이 이민 모집을 보고, 이민을 결행하게 됐다. 당시 하와이는 설탕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선택하게 됐다.

최초의 이민선 갤릭호의 조선인 승선자는 102명이었다. 190212월 인천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1903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질병자 16명을 제외하고 86명만이 상률허가를 받았다.

19031월부터 19058월까지 총 64회에 걸친 항해에 이민자는 7,414명이었다. 하와이에는 약 65개의 농장에 5,000여명의 한인 노동자들이 혼합 농장에서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생활을 했다. 사탕수수농장에는 십장의 감시를 받았고 땡볕 아래서 힘든 노동도 견뎌야만 했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점은 농장에서의 규칙적인 생활과 제도의 압박감이었다고 한다.

한 달 일을 마치면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던 번호에 따라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다. 1905년까지 어른 남자의 월급은 한 달에 17달러 정도였으며 여자나 소년들은 하루에 50센트를 받았다.

1920년까지 하와이에 온 한인 7,400여명 중 2,000여 명은 미국 본토로 이주했고, 1,000여명만이 조국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미국 본토로 간 한인들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각 지역 특성에 맞게 하와이에서는 농사를 시카고와 뉴욕에서는 채소상과 식당업을 하면서 정착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독립운동 기여도는 매우 컸다. 임시정부를 비롯해 여러 독립운동가들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구소련 곳곳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러시아어로는 카레예츠, 혹은 카레이스키) 동포사회의 가장 큰 트라우마는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 조치다. 스탈린은 1937년 블라디보스토크 등 극동 연해주에 이미 정착한 조선인(고려인)들을 강제로 열차에 태워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에 내려놓았다. 연해주의 풍요로운(?) 땅에서 강제로 쫓겨난 고려인들은 그 곳에서 다시 생활의 터전을 닦아야 했다. 한동안 정치·경제적 권리도, 시민권도 제한됐다.

지금 윤석열정권에서 육사 동상 철거의 강행하는 홍범도 장군도 카레이스키의 설움을 받았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의 교민 간절한 입국을 거부한 윤 대통령이 기자들도 통제하고 우크라이나를 방문, 지원하겠다고 한 행위는 참 이율배반적이다.

한맺힌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는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무려 반세기가 지난 19934월에야 러시아에서 강제이주의 위법성이 인정되고, 고려인에 대한 정치적 복권(정치적 복권을 위한 법률 채택)도 이뤄졌다.

지난 20141217일 개봉돼 화재를 모았던 영화 국제시장에 나왔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는 1960년대 한국의 실업률 해소와 외화 획득의 필요성, 부족한 노동 인력공급과 경제원조라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독일 이주가 본격화 되었다. 247명의 1차 파독광부를 시작으로 1970년대 말까지 약 8천여 명의 광부들과 약 1만여 명의 간호 여성들이 독일로 떠났다.

그러나 우리 이민 역사중 가장 아프고 가장 치욕스런 역사는 해외 입양. 1950년대 10만명이 넘는 전쟁고아 및 혼혈아동 문제로 해외 입양이 시작됐다. 빈곤 가정의 아동과 미혼모의 아이들이 입양으로 이어졌고 점차 그 수가 늘어나 1980년대에는 해외 입양수 세계 1위 국가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105, 세계 한인의 날(World Korean Day)을 맞았다. 법정기념일인 이날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며, 재외 한인의 권익 신장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됐다.

우리 동포들은 이만리 타국에서 아리랑의 인맥으로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의 삶이요 희망이요 역사가 된 아리랑이 더 널리 더 멀리 퍼져나가 대한민국의 창()이다.

재외 한인 이산의 역사는 우리 민족 수난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2019년 한국 외교부 발간 자료를 보면 한반도 밖에 거주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수는 750만명에 이른다. 남과 북을 합친 인구의 10분의 1이 국외에 살고 있는 셈이니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조국은 우리의 자산이다. 아시아의 동쪽 귀퉁이에 위치해 변방으로 취급받던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섰다.

한글을 필두로 우리의 문화는 한류의 열풍을 타고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당당히 세계와 경쟁하며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가 함께 이루어낸 우리의 자산이다.

전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750만명의 재외동포는 역사적, 정치적, 이념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다른 어떤 민족보다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재외동포들의 이러한 풍부하고 다양한 체험과 경험은 통일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통일 조국의 청사진을 설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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