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과 한음’으로 널리 알려진 오성 이항복이 재상으로 있을 때 높은 관리들이 찾아오면 당연히 앉아서 절을 받았다. 재상은 조정에서 제일 높은 직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신 아무개 훈도가 문간에 와있다는 전갈을 받고는 버선발로 뛰어가 맞아들이고 공손히 접대했다. 주위 사람들이 이유를 물으니 어렸을 때 글을 배운 훈장이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날 이항복은 훈장이 묵고 있는 숙소로 몸소 찾아가 비단과 쌀 등을 드리며 노자에 보태어 쓰도록 했다. 그러나 훈장은 “여행에 필요한 경비는 쌀 두어 말이면 족하다”고 말하며 나머지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준(李埈)의 『창석집(蒼石集)』에 나오는 일화이다. 훈도는 시골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천자문 등을 가르치는 종9품의 미관말직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지위에 있는 일국의 재상이 하찮은 시골 훈장을 버선발로 뛰어가 맞아들인 것이다. 어렸을 때의 선생도 선생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선생을 존경하는 이런 마음이 있었기에 그가 후일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을 것이다.
이항복도 훌륭하지만 그의 스승 또한 못지않게 훌륭하다. 아마 훌륭한 인품을 지닌 스승이 있었기 때문에 이항복과 같은 훌륭한 제자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훈장은 어릴 때 글을 가르쳤던 아이가 재상이 된 것을 보는 것만으로 더없이 기뻤을 것이다. 그리고 재상이 된 후에도 오만하지 않고 옛 스승을 모실 줄 아는 제자를 보고는 선생으로서의 보람을 만끽했을 것이다.
40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계에는 이러한 교육의 가치관을 찾아 볼 수 없이 황폐화되었다. 일부 진보성향 교육수장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정치적 참여를 각각 들고 교육의 현장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일부 전교조 교사들은 진보정당에 가입, 공개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섰다. 이들의 행동은 국가공무원법 66조(집단행위 금지)와 교원노조법 3조(정치활동의 금지) 등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다.
이 같은 전교조 교사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법원이 올바른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30일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고 당비 명목으로 회비를 낸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로 기소된 240여명의 전교조 교사와 공무원에 대해 당비를 낸 부분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민주노동당에 납부한 돈은 후원금의 성격으로 봐야 한다"며 "이들은 교원이나 공무원으로서 특정 정당에 후원금을 내는 것이 위법한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어 위법성을 모르는데 대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며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정치적 이념 논쟁이 있더라도 교육계가 가장 마지막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도 전교조는 아직 합법화되지 않았다. 미국 교원노조도 우리처럼 활성화는 안 됐다. 유럽도 교육은 보수적 영역으로 놔둔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을 이념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보수는 과거에 유신 같은 걸 교육으로 정당화하려 했고, 진보도 마찬가지다.
이번 법원 판결을 전교조는 수용하고 이들이 표방하고 있는 교사의 기본적 권익 옹호, 민주교육 발전에의 기여, 참교육 실현 등에 매진해야 한다.
참교육 실현에 매진해야 할 전교조가 앞장서서 정당에 가입하고 정부를 비방하는 시국선언을 하는 것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편협된 정치이념이나 투쟁의식을 주입시키는 부정적이고 참교육에 역행하는 처사에 불과하다.
이러한 전교조의 정치투쟁 행위에 대한 내부 비판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교육과 상관없는 정치투쟁과 좌편향 이념교육으로 교육계 안팎에서 이미 지탄을 받아왔다.
오죽했으면 전교조 본부 전 정책연구국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학교자치연대 등 교육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전교조의 시국선언 등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학생 학부모의 요구에 부응해 교육현장의 문제에 논의를 돌리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전교조는 정치투쟁에만 매달리고 도덕성마저 의심받다 보니 입지가 계속 좁아지고 있는 실정으로 이미 소속 교사수도 2003년 9만 4천여명에서 이제는 겨우 6만여명 정도로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전교조가 존립 근거를 찾고 학생 학부모 현장교사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미래세대의 가치관을 편협되고 일방적인 좌파이념으로 오염시키는 정치투쟁을 당장 중단하고 국민 앞에 겸허히 나서 도덕성 회복과 참교육 실천 등 교육개혁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추락하고 있는 한국의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이를 위해 전교조 자기들의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학생, 학부모 나아가 국가를 위한 일부터 하자.
물론 극히 소수이겠지만 스승으로서 학생을 지도하는 일을 하나의 직업으로, 또 단지 생계유지를 위해서 지식을 파는 세일즈맨쯤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학생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생명을 사회에서 보람 있게 사용하는 것은 스승으로부터 배운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 마음으로 학생을 사랑하고 지도하고 있는 지 자문해 볼 일이다.
청소년기는 우리의 인생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를 함께 하는 스승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의 청소년들을 밝고 푸르게 자라도록 이끌어 주는 진정한 스승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어떤 의미에서 교육자는 교육의 제단에 자신의 인생과 열정을 바치는 성직자가 아닐까. 성직자가 타락하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추악하게 보이는 것처럼, 교육자가 타락하면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심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신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널드 토인비는 나라들의 흥망사를 연구하면서 "꿈을 꾸지않은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이제 교사들은 토인비의 이 말을 되새겨 우리 학생들이 꿈을 꾸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시련도 극복하려는 정신을 심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文質彬彬(문질빈빈:외양도 아름답고 내면도 충실해 조화로운 상태)의 교육의 장'이며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을 勿失好機(물실호기:위기가 곧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