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 여는 세상-“사회 정의 얼굴, 바로 共存”➽“雨水야, 신 내린 빗물로 윤석열發 검찰공화국 쓸어 내려라!”

능산선생 2023. 2. 20. 06:03
728x90
반응형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사회정의를 모든이가 완벽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가장 빈곤한 사람들의 복지를 우선 배려하고, 불평등한 결과는 존재하지만 기회만큼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주는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는 이렇게 말했다.

220일은 빈곤과 실업을 퇴치하고 균형 잡히며 안정적인 사회를 이루고자 제정된 기념일 세계 사회정의의 날이다. 1995년 발표된 코펜하겐 선언의 정신을 이어, 2007년 유엔 총회에서 기념일로 채택되었다.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사회적 통합을 지원한다는 목적을 갖고 각종 활동이 진행된다.

유엔과 국제노동사무소를 포함한 많은 단체들이 사회 정의의 중요성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며, 빈곤과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계획을 제안한다. 학교에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나 실업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해당 시기에 발생한 전 세계의 사례를 들어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20여 년 동안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사회의 보수화는 많은 문제를 낳았다. 이른바 체제 변화를 경험한 2017년부터 대중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개인의 출세가 아니라 공동체가, 정치 혐오가 아니라 정치 참여가, 자기비하로 인한 우울이 아니라 극복을 통해 사회로 복귀하는 애도 작업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 수십 년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본 분노한 대중은 지난 2016년 촛불에서 보여주듯이 각성된 시민으로 거듭났다.

대한민국의 20대는 픽미세대’ ‘나를 선택하라는 간절함을 품고 사는 세대. 단군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췄지만 선택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고단한 세대다.

그래서 2030세대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 공정(公正)’을 중시 한다.

그러나 사회 정의를 위해 법을 집행했던 윤석열정부 들어 불거진 소위 힘 센 사람들의 반칙.갑질 시비에 이어 내로남불사회로 몰아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시절, 대검 간부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나는 헌법주의자"라며 헌법 정신에 입각한 공정한 수사를 할 뿐, 정치엔 관심이 없다고 했다. 광주를 방문했을 때는 "광주의 오월 정신으로 회복한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가 바로 헌법정신"이라 하고 대통령에 당선 후 취임식에서는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며 이것이 헌법정신이라고 했다.

도덕경에 자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言者不知)’라고 했다. “참으로 아는 사람(知者)은 자신이 아는 것을 말로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이 아는 것을 말로 드러내는 사람은 참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말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말로 인한 오류를 경계하는 말이다. 상대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욕심이 있거나 사심(私心)이 있어서다. 모르는 것을 아는체하고 허세를 떨다 본색이 드러난 것이다. 유체이탈화법이 그렇고 윤석열화법도 그런 이유에서다. 혼자서 잘난체 하지만 듣는 사람이 속으로 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만 모른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무려 35번이나 강조하면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헌법에는 자유보다 평등이 더 중요하다고 했지만 윤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를 말한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모든 국민의 자유가 아니라 기득권자들, 초부자들 친일 친미주의자들, 그리고 친일의 후예들이 누릴 자유라는 것을 취임 6개월을 지나면서 들통이 나고 말았다. 말로는 공정이니 법치주의를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의 공정에는 공정이 없고 그의 법치는 인치(人治)거나 아니면 검치(檢治). 그가 지키겠다는 자유민주주의헌법정신이 아니다.

대통령의 반지성주의가 대한민국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튼다.

우수 무렵이 되면 그동안 얼었던 강이 풀리므로 수달은 때를 놓칠세라 물 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한다. 원래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되면 봄은 어느새 완연하여 마지막 5일간, 즉 말후(末候)에는 풀과 나무에 싹이 튼다.

이 절기가 지나면 생동하는 봄,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느끼게 하는 계절 춘삼월이 온다.

그러나 그놈의 코로나 19’ 때문에 올 겨울 가장 추위가 덮쳐 서민들의 가슴을 꽁꽁 얼어붙고 있다.

물론 분노는 한 사회의 건강함을 포착할 수 있는 일조의 도덕적 바로미터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다. 그래서 플라톤은 분노는 정의를 향한 영혼 능력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분노를 잘 요리하는 주방장이 지금 필요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적으로 몰아 난도질하는 극렬 지지자들의 행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상대 정파의 정치인들도 모자라 일반 서민까지 사냥의 먹잇감으로 삼는 모택동의 홍위병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공감능력은 낮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으로써 정의를 공감이라고 했다. 공감은 타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 그 감정을 자기 일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개인의 삶에서든 공적 활동에서든 아무리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할 때라도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판단이 발휘되어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 갈 수 있다.

행복이라는 목적은 그것을 직접적 목적으로 삼지 않을 때만 얻어질 수 있다. 자신의 행복이 아닌 다른 목표에 마음을 집중하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 행복은 따라온다. 당신 스스로에게 행복한가를 묻게 되면 행복은 사라진다고 한다.

나라가 정의의 길에 미치지 못하면 국민이 행복할 수 없다. ‘의 고른 분배가 경제적 관점에서 정의이다. 공자는 흙수저 제자의 등을 다독이고 쌀독이 빈 제자에게 온정의 손길을 베푸는 방식으로 분배의 정의를 구현했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기준을 배부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보다 굶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에 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정의는 토마스 모어나 칼 마르크스가 말하는 정의 보다는 빅토르 위고가 에서 말하는 정의에 더 가깝다. 빅토르 위고는 훌륭한 분배란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공평한 분배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수자와 다수자, 부자와 빈자, 귀족과 평민이 각자의 이익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혼합형 정치를 가장 이상적인 정체로 보았다. 가장 아름다운 정의의 얼굴은 바로 공존이다.

자유를 외치는 윤석열정부, 지금 민중은 '자유 아니면 빵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 촛불로 이룩한 사회, 분노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은 희망의 싹이라도 보고 싶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