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 여는 세상-10월1일 ‘국군의 날’ 지우개➫9월17일‘광복군의 날’ 재탄생!!

능산선생 2023. 9. 17. 08:00
728x90
반응형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우리는 한국 독립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우리는 한국 광복군, 악마의 원수() 쳐 물리자./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진주 우리나라 지옥이 되어/

모두 도탄에서 헤매고 있다./

동포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고향에!/

박영만 광복군총사령부 선전과장이 작사하고 한유한이 작곡한 한국광복군

19409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창설된 광복군, 83년이 됐다.

광복군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대일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전투력 배양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를 뒷받침할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할 수 없었다.

특히 행동준승으로 광복군의 활동은 중국군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나, 독자적인 활동이라 하더라도 제한된 여건 속에서 대적선전·정보수집·포로심문 등 정보선전에 국한되었다. 초모공작과 더불어 광복군의 주요임무였던 선전공작은 대내적으로는 광복군의 존재와 사명을 국내에 인식시켜 동포들의 총궐기를 촉구하고, 일본의 대중(對中) 작전에 대한 방해공작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고 독립국으로서의 민족문화와 역사를 알리면서, 광복군이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여할 자격과 의사가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광복군이 가장 힘을 기울인 것은 미국과의 합동작전이었다.

1945315일 제6징모분처 주임 김학규는 쿤밍의 미군 제14항공대 사령관이며 미국전략사무국(O. S. S)의 최고책임자인 센놀트와 협의, 공동작전을 위한 6개항에 합의했다.

O. S. S.에서는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광복군에 편입된 김준엽,장준하, 유일한등 학생들을 중심으로 특수공작교육을 실시, 이들을 국내에 투입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19454월부터 이들은 중국의 시안과 푸양에서 훈련에 들어갔으나, 곧 이은 일제의 항복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광복군의 항일무장투쟁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태 평양전선의 전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연합국과의 군사합작 및 공동작전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일본군에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 영국군이 대일작전을 수행하는데도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광복군 국내정진대가 비록 여의도 비행장에서 28시간 만에 돌아가고 말았지만 광복군이 당시 해외 독립운동세력 가운데 해방된 조국에 가장 먼저 진입했던 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광복군 창설 팔순을 넘어 101국군의 날을 없애고 광복군 창설 일로 변경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50101, 한국전쟁 발발 3달여 만에 육군 제3사단 23연대 3대대가 처음으로 38선 돌파를 기념, 현행 국군의날이 101일로 정해진 계기다. 1956년 이승만 정부가 이날을 기념일로 지정한 이래, 우리 군은 매년 101일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한 훈포상과 각종 행사를 열어왔다.

군의 뿌리를 해방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보고, 광복군 창설일인 917(1940)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자는 주장이 여권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어서다.

지난201966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엔 이 같은 인식이 배어있다. 문 대통령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김희선 통합신당 의원 등 14명이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로 변경하자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국군의 날 변경 움직임이 본격화한 건 문재인 정부 들어서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8월 국무회의에서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곧이어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군의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17일로 바꿔야 한다국군의날 기념일 변경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20219월엔 같은 내용의 법안(민주당 의원 33명 참여)도 냈다.

국방부는 2018년 창군 이래 처음으로 독립군과 광복군을 우리 국군의 뿌리로 공식 인정하는 내용의 발간서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을 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육군사관학교는 홈페이지에 게재돼있던 백선엽 장군의 전쟁 활약상이 담긴 웹툰(육사 학술정보원 제작)을 삭제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독립군이나 광복군의 법통을 이어받은 게 아니라 일제 때 독립군을 토벌하던 토벌 앞잡이들이 법통을 이어받은 조직이다. 백선엽은 만주에서 일본 앞잡이 하면서 독립군 토벌하는 데 제일 앞장선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백선엽은 좌익으로 몰려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를 구출,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19년간 1인 독재국가를 만들게 했다.

윤석열 정권은 여기에 더 나아가 홍범도장군의 공산주의자로 몰아넣고 일제 앞잡이로 독립군을 총살하는 백선엽을 대한민국의 최고의 군으로 세우려고 하고 있다.

이명박근혜정권에서 볼수 있듯이 나라를 지키는 보수가 아닌 수구꽅통이 전유물일 경우 천안함 폭침’ ‘개성공단 폐쇄’ ‘목함지뢰등에서 안보는 허물어졌다.

헌정사상 아니 세계사상 첫 명예혁명으로 대통령을 퇴출시킨 촛불, 촛불 원흉을 구속 수감시킨 劍客 윤석열 정부가 다시 도돌이표로 회귀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위기 상황때 일본군의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취임하자마자 한일정상회담을 열고 위안부 문제를 비롯 독도 영유권등에 대한 현안을 일본에게 덮썩 주는 제2의 한일합방의 굴욕으로 몰아넣고 있다.

나는 지금 독립운동가이며 의열단·조선의용대를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던 김원봉 장군을 회고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활동했던 김 장군은 해방 후, 백범 김구선생과 함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뒤, 북한에 잔류하여 활동했다가 국가검열상·내각 노동상·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나 195811월 숙청당했다.

이명박근혜정권에서 볼수 있듯이 나라를 지키는 보수가 아닌 수구꽅통이 전유물일 경우 천안함 폭침’ ‘개성공단 폐쇄’ ‘목함지뢰등에서 안보는 허물어진다.

선제타격론을 연일 겁박하는 대통령, 자유, 자유~~ 외치지만 말로만 자유는 방종이 뒤따르며 자유를 빙자한 탄압과 억압이 뒤 따른다. 그후 말로는 바로 촛불이다. 201610월 박근혜 탄핵 시발점 촛불이 다시 서울 장안을 비롯 전국으로 타오른다.

침탈당한 조국을 구원하기 위한 광복군의 정신이 이제 구국의 정신으로 삼아 국군의 날을 지우개로 지우고 광복군 날로 새롭게 쓰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