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치아만(灣)에서 배가 전복되어 아깝게도 30살에 요절(夭折)한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는 ??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또 피고 지진(地震)에 무너진 땅에서도 맑은 샘물이 솟아 오른다??고 노래했다.
폭풍이 땅을 휘몰아 칠 때 나무는 꺾이어 뿌리 채 뽑히고 풀은 상처를 입고 흔적 없이 사라진다. 지진이 일어 땅이 갈라지고 집들이 무너질 때, 모든 것은 다 끝장이 나는 것만 같다. 그러나 폭풍이 지나가면 상처 입은 나무에서 잎이 다시 열리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파괴??의 힘도 크지만 ??건설??의 힘은 더 크다. 죽음의 힘도 무섭지만 생명의 힘은 더욱 무섭다. 폐허에서 파릇파릇 솟아나는 어린 새싹을 볼 때 우리는 생명의 의지, 생명의 힘의 크고 강하고 무서움에 새삼스럽게 놀란다.
제3호 태풍 에위니아가 전남 진도부근으로 상륙한지 11시간여 만에 강원도 홍천 쪽에서 소멸되자 물난리에는 별일 없겠지 하던 참에 특별한 예보도 없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며칠 동안 계속된 폭우에 곳곳에서 산사태가 나고 도로가 끊기고 집들이 통째로 쓸려나가고 농경지가 유실되어 드넓던 초록농지가 누런 흙탕물 바다로 변했다. 흙탕물에 휩쓸려 사망 실종된 가족을 찾아 나선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우리들의 가슴을 메이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평일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그것도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반대시위를 대대적으로 벌이는 통에 자동차로 10분 거리를 두 시간이 넘게 갇혀있게 하는 불상사가 겹쳤다.
게다가 직접교섭대상이 아닌 포스코본사 건물로 난입한 포항지역 건설노조가 열흘가까이 점거농성을 벌인 통에 포스코업무가 마비되고 그동안 쌓아왔던 실적에 손상을 입혔다. 특히 건설노조원들이 LP가스통으로 사제 화염방사기를 만들어 난사하자 나이 어린 전경들이 간신히 방패로 막다가 화상을 입어 후송되는 참변을 목격하는 시민들은 억하심정(抑何心情)으로 망연자실(茫然自失)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절망(絶望)은 없다. ??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피고, 지진에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물이 솟아오른다??는 셸리의 노래는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이 상황에서 힘차게 합창하는 약진가(躍進歌)가 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은 죽음이니, 파괴니 하는 큰 힘에 압도되어 절망에 빠지는 수가 있다. 그러나 생명은 절망의 고통을 뚫고 희망으로 재생한다.
마가레트 미첼은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말로 마무리 지으며 고통을 이겨내는 희망의 종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레트가 자신의 애인이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타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가슴속에 희망의 등불을 켜야한다.
절망은 없다. 눌리면 또 고개를 쳐드는 풀처럼 강인한 우리들 내재(內在)의 힘을 또다시 발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