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부끄러운줄 아시오 나에겐 사대부의 예보다 내나라 내백성이 열갑절 소중하오” 2012년 9월 개봉돼 관람객 1,230만명을 넘긴 영화‘왕이된 남자’의 한구절로 광해의 人治를 말해준다. 조선의 15대 왕 광해(1608년 재위)는 사멸하는 명나라 대신 신흥 강국 후금을 인정하고 '등거리 외교(중립 외교)'를 펼쳤다. 위험에 처한 명은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했으나, 광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1592년 명과 일본의 전쟁에 낀 임진왜란으로 망가진 조선을 또다시 전쟁에 빠지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약소국의 왕이었던 광해는 ‘실리’를 쫓았다. 靑龍의 해가 시작되자 마자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조선시대의 명과 후금(後金·훗날 청)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명·청 교체기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