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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2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 여는 세상-“아리랑~아라리요!!”➫750만 한인 삶,‘대한민국 窓’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1902년, 서구 열강의 이권 개입 경쟁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계속되는 가뭄으로 혹독한 굶주림이 지속됐다. 이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은 하와이 이민 모집을 보고, 이민을 결행하게 됐다. 당시 하와이는 설탕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선택하게 됐다. 최초의 이민선 갤릭호의 조선인 승선자는 102명이었다. 1902년 12월 인천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1903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질병자 16명을 제외하고 86명만이 상률허가를 받았다. 1903년 1월부터 1905년 8월까지 총 64회에 걸친 항해에 이민자는 7,414명이었다. 하와이에는 약 65개의 농장에 5,000여명의 한인 노동자들이 혼합..

사회 2023.10.05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여는 세상-【우크라이나 수교 31년】카레이스키“고리키‘어머니’ 목놓아 부른다!”➽무기 아닌 귀환을~~

[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1800년대 조선시대 국정이 혼란하여 소수의 양반들이 절대다수의 토지를 독점하게 되자 먹을 것을 찾아 가난을 피해서 청나라 동북지방, 즉 만주로 이주하였고 이들을 고려인이라고 불렀다. 러시아인은 그들을 ‘한국의’ ‘한국적인’이라는 뜻의 러시아어 ‘카레이스키’(корéйский)로 불렀다 1930년대 말에 소련 정부는 일본의 간첩 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한국인들을 우크라이나로 추방시키면서 우크라이나 고려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 2022년 기준으로 49,817명의 고려인이 우크라이나에 거주하고 있다. 정부는 1988년부터 카레이스키의 한국 국적 회복이나 영주 귀국을 허용했다. 이른바 ‘150년 만의 귀향’..

정치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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