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성탄절, 성경의 황금률이다.
“왕국을 다스리는 것보다 가정을 다스리는 일이 더 어렵다”는 몽테뉴의 탄식이 기쁜 날 대한민국의 땅에서는 연일 일어나며 곳곳에서 가정들이 해체되고 있다.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 하우스리스는 줄었지만 가정이 깨진 자리에서 방황하는 홈 리스는 더 많아졌다. 집들은 늘어나는데 가정이 사라져 간다. 가정은 사회공동체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다. 가정이 불안한 사회에서 내실 있는 발전을 기약 할 수는 없다.
양극화와 격차사회의 행진을 막지 못했으며 사회조직은 승자독식을 허용했다. 그래서 한국은 갈등공화국이라고 한다. 갈등공화국의 사회적 비용은 연 500조원이 낭비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비용은 해마다 국내 총생산의 27%에 이른다. 매년 300조원에 가까운 돈이 낭비된다.
사회갈등은 선진국 반열에 완전히 진입하지 못한 대한민국호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이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디딤돌이다.
해방 후 역사를 도덕 대 반도덕, 민족 대 반민족, 냉전 수구 대 종북 좌파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형태다. 이런 극단적 시각은 해방직후 시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 않은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성장을 목표로 바쁘게 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배려의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의제가 너무 많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블랙박스가 되었다.
한국사회의 현 주소는 심각했다.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됐고 소득은 높아졌지만 정신문화와 가치는 사라졌다. 경제, 사회정책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그 방향이 자주 바뀌는 것도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와 철학의 뿌리가 내리지 못했다. 지금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는 길을 잃고 있다. 냉전시대의 최전선에서 늘 안보에 위협을 느끼며 살았던 탓에 사상과 철학에 대한 토론도 자유롭지 않다. 암세포를 죽이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정상세포까지 건드리게 되어 결국 몸을 망친다. 근본적으로 암세포가 좋아할 환경을 만들지 말고, 영양공급을 막음으로써 스스로 쪼개지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블랙박스를 열어 부실.부조리의 신호를 잡아내야 한다.
이 같은 신호는 역지사지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나와는 다른 상대방을 있는 그래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역지사지다. 남의 입장이 되어보려면 내속의 남을 발견하는 수밖에 없다. 역지사지의 덕목은 나와 남이 연결돼 있다는 동양적 상상력이 소산이다. 그래서 정이 강조된다. 역지사지가 덕목인 사회에서 그 덕목이 사라지면 고집과 강요와 권위만 남는다. 깨끗이 갈라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일이 벌어진다.
지금 우리 정치문화의 깊은 뿌리에 아직까지도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 있는 상황이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때 통합의 정치가 필요하다. 통합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여기 강자가 보여준 관용의 정치가 바탕이었다. 통합전제는 관용이다. 관용은 우월한 위치의 세력이 먼저 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위정자들은 예수가 말씀하신 “너희가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그 사람은 왕궁에 있다”(마태 11)를 다시 한번 읽고 외우고 해서 몸의 말단이 썩어 들어가면 그 부위가 커지지 않도록 단호하게 잘라내는 해법을 동원하라.
그러나 지금 2024년 저물어 가는 대한민국號, 잘못 선택한 지도자에 의해 침몰 위기에 치달을 때 민중이 나서서 순항의 돛을 다시 올렸다.
안보가 중시되는 세계 유일한 이념대립 분단국가에서 이승만 하야 ‘4.19혁명’, 박정희 암살 ‘10.26’, ‘광주항쟁’ ‘6월 항쟁’ ‘촛불혁명’ ‘윤석열 탄핵 촛불’등 세계 무혈 민주주의 불꽃을 피운 나라가 대한민국 밖에 없다.
우리는 민중, 국회의원, 언론인, 판사등이 국가의 관료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더 이상 시스템을 감독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는 독재정권으로 나락하고 만다는 것을 혁명을 통해 한반도에 정착시켜 세계 유일의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작품인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람들은 성공의 이유를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어떤 일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수없이 많은 실패 원인을 피해야 하는데, 이를 일러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고 한다.
진화 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야몬드는 톨스토이의 말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그의 '총, 균, 쇄'에서 “흔히 성공의 이유를 한 가지 요소에서 찾으려 하지만 실제 어떤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이처럼 까다로운 수많은 요인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심각한 수준이 된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다.
자고로 멈출 때 멈추고, 그칠 때 그칠 줄 아는 것은 최고의 지혜요 지략이다. 그러면 예수의 말씀처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가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직도 행복이 아닌 분노가 사회 전반에 가득 찼다. 분노의 분출을 노린 자가 탄핵되어 囹圄(영어)의 몸이 되었다.
나라가 정의의 길에 미치지 못하면 민중이 행복할 수 없다. ‘富의 고른 분배’가 경제적 관점에서 정의이다. 공자는 흙수저 제자의 등을 다독이고 쌀독이 빈 제자에게 온정의 손길을 베푸는 방식으로 분배의 정의를 구현했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기준을 ‘배부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보다 ‘굶는 사람이 얼마나 적은가’에 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정의는 토마스 모어나 칼 마르크스가 말하는 정의 보다는 빅토르 위고가 에서 말하는 정의에 더 가깝다. 빅토르 위고는 훌륭한 분배란 평등한 분배가 아니라 공평한 분배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수자와 다수자, 부자와 빈자, 귀족과 평민이 각자의 이익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혼합형 정치를 가장 이상적인 정체로 보았다. 가장 아름다운 정의의 얼굴은 바로 공존이다.
지금 뜬 구름 없는 ‘계엄령 선포’로 청룡의 해를 망가트린 尹에 대한 민중의 분노는 이제 가라앉아 가고 있다.
분노는 한 사회의 건강함을 포착할 수 있는 일조의 도덕적 바로미터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다. 그래서 플라톤은 분노는 정의를 향한 영혼 능력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분노를 잘 요리하는 주방장이 지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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