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닭이 걱정이 되나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지 않을 수도 없으므로 어느 날 나무를 지고 내려오는 통에 또 닭의 횃소리를 듣는다. 부리나케 가보니 ‘나’의 수탉이 피를 흘리고 빈사 지경에 이르자 ‘나’는 지게 막대기로 점순네 큰 수탉을 때려 죽인다. 일을 저지르고 보니 점순네에 마름으로 사는 ‘나’의 처지가 걱정돼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울고 있는 ‘나’에게 점순이 이 담부터 안 그럴테냐며 확답을 받고 닭 죽은 건 이르지 않겠다며 약속을 한다. 그러곤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산기슭에 소복히 깔린 노란 동백꽃의 향긋한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아찔해졌다.」
1930년대 봄, 강원도 산골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김유정의 소설‘동백꽃’이다.
대나무·소나무·매화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 추운 겨울철의 세 친구)라 하듯이, 다른 식물이 모두 지고 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歲寒之友)라 부르기도 했다.
“나는 통영에서 자랐고, 통영에서 그 귀중한, 정신적인, 정서적인 모든 요소를 내 몸에 지니고, 그것을 나의 정신과 예술적 기량에 표현해서 나의 평생 작품을 써 왔습니다. 내가 구라파에 체재하던 38년 동안 나는 한번도 통영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잔잔한 바다, 그 푸른 물색, 가끔 파도가 칠 때도 파도 소리가 나에겐 음악으로 들렸고, 그 잔잔한, 풀을 스쳐가는, 초목을 스쳐가는 바람도 내겐 음악으로 들렸습니다.”
현대 음악의 거장 윤이상 선생이 타계하기 1년 전 조국 방문이 좌절되자 고향의 시민에게 보낸 음성 메시지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정작 그를 낳은 조국 땅을 끝내 밟지 못한 음악가. 지난 1995년 11월 3일 오후 4시 20분 독일 베를린 발트병원에서 폐렴으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윤이상 선생을 포함해 교수·예술인·의사·공무원 등 194명이 동베를린(동백림) 소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활동을 하고 일부는 입북 또는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국내에 잠입하여 간첩활동을 했다고 1967년 7월 8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국내 언론에 발표한 동백림사건(東伯林事件)이 일어난 지 57년이다.
한국은 경제발전에 필요한 외화획득을 위해 서독에 광부1963년 12월와 간호사1966년 10월를 파견하였고, 이들은 유학생들과 더불어 재유럽한인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국내정치상황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재선에 성공하였으나 1971년 정권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헌법을 고쳐 대통령의 3선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때문에 박정희 정권을 1967년 6월 8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헌이 가능한 2/3 이상의 의석을 획득하는 것이 절박한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와 관련 1967년 6.8 선거에서 박정희 정권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2/3 의석을 차지하는데 성공했고, 야당과 대학생들이 6.8 부정선거에 대해 대규모 규탄시위를 전개하자, 정부는 6.16일 기준 30개 대학과 148개 고등학교를 임시 휴업시키는 등 박정희정권의 장기집권을 둘러싼 분기점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 중앙정보부는 1967년 7월 8일부터 17일까지 7차에 걸쳐 ‘동백림(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문화예술계의 윤이상·이응로, 학계의 황성모·임석진 등 194명이 대남 적화공작을 벌이다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 중앙정보부의 발표에 따르면 사건 관계자들은 1958년 9월부터 동백림 소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활동을 한 데 이어 일부는 입북 또는 노동당에 입당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간첩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중앙정보부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도 여기에 관련된 반국가단체라고 발표했다.
이후 사법부는 동백림 및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을 별도 심리하기로 결정하고 1969년 3월까지 동백림사건 관련 재판을 완료하여 사형 2명을 포함한 실형 15명, 집행유예 15명, 선고유예 1명, 형 면제 3명을 선고했다.
중앙정보부의 발표와 달리 동백림사건 관련자 중 실제로 한국에 돌아와서 간첩행위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복이 두려워서 또는 단순한 호기심에 북한에 잘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낸 정도였다. 중앙정보부는 대규모 간첩단이라고 하여 무려 203명의 관련자들을 조사했지만, 실제 검찰에 송치한 사람 중 검찰이 간첩죄나 간첩미수죄를 적용한 것은 23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실제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사람은 1명도 없었다.
이러한 재판 결과는 동백림사건 수사가 강제연행과 고문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학생과 교민들의 강제연행은 외교적 마찰을 불러 일으켰다. 서독과 프랑스 정부는 영토주권의 침해라고 강력히 항의하고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 광복절을 기해 서독 및 프랑스의 의견을 수용하여 사건 관계자에 대한 잔여 형기 집행을 면제, 정규명·정하룡 등 사형수까지 모두 석방했다.
또한 해외 거주 관련자에 대한 불법연행, 조사과정에서의 가혹행위, 간첩죄의 무리한 적용과 사건 외연 및 범죄의 확대·과장 등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독일·프랑스 등으로부터 주권침해 공세에 시달리면서 국제사회에서 국가 신인도가 추락되고 윤이상·이응로 등을 위한 국제사회의 탄원운동 등으로 인권후진국으로 낙인찍혔다.
사건이 발생한지 39년만인 2006년 노무현정부는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설치한 후 재조사에 들어갔다. 이 위원회는 2006년 1월 26일에 당시 정부가 단순 대북접촉과 동조행위를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하여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혔다. 또한 사건조사 과정에서의 불법 연행과 가혹행위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명예혁명, 세계 민주주의 새장인 촛불 민주주의는 이제 민주주의의 촛불, 민주주의의 눈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좀먹는 바퀴벌레를 퇴치, 민주주의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57년만에 국가정보원이 중앙정보부로 회귀하고 있는지?
국정원 직원들이 전에 상관인 국정원장들을 고소하고 이에 검찰은 마치 물 만난 듯 즉시 수사해 착수했다. 문재인 정부시 국정원 안까지 들어가 압수수색을 해 국정원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던 검찰청이 전 원장을 법적인 수사까지 하지 않았는가?
조작 수사한 안동완 검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오성씨에 대한 '보복 기소'로 공소권을 남용했다며 지난해 9월 21일 안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 동백림 사건을 재점화해 봤다.
윤이상 선생을 간첩으로 몰았던 김형욱 중정부장, 그는 김재규 중정부장의 지시를 받은 요원들에 의해 ‘10월유신’기념일인 10월 7일에 파리에서 납치돼 늦은 밤 파리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4km 떨어진 시외곽의 한적한 양계장에서 암살한후 사료 분쇄기에 투입되어 흔적도 없이 닭모이로 사라졌다.
그후 19일후 암살지시를 한 박정희 대통령은 암살 진두지휘한 김재규에 의해 궁정동에서 암살이란 비운을 맞았다.
‘칼은 칼로 망한다. 피는 피를 부른다.’
이것은 인류 역사를 보면 증명되는 명백한 진실인가 보다!!
명예혁명, 세계 민주주의 새장인 촛불 민주주의는 이제 민주주의의 촛불, 민주주의의 눈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좀먹는 바퀴벌레를 퇴치, 민주주의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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