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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총리 퇴임식-<曲學阿世>

능산선생 2006. 8. 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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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inew1@hanmail.net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쓴 북송(北宋)의 거유(巨儒) 사마광(司馬光)d,s 『경사는 만나기 쉬워도 인사는 만나기 어렵다』(經師易遇人師難遇)라고 말했다. 지식이나 전달하고, 준비된 교재 노트로 강의나 하는 선생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지만 제자들에게 깊은 인격적 감화(感化)를 주고, 인생이 올바른 길을 동시에 가르쳐주는 스승은 드물다. 선생은 많아도 참다운 스승은 드물다. 교수가 되기는 쉬워도 참다운 교육자가 되기는 어렵다.


남의 스승이 되려면 제자에게 향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하고, 그의 사언행(思言行)이 젊은이의 본보기가 되도록 정진하고 노력하는 수양심(修養心)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교육부의 수장인 교육부총리 인선에 제일 먼저 걸려져야할 대목이 교육자로서의 도덕성 결여를 지적하는 것이다. 몇 년전 송자 전교육부장관과 이준준 전교육부총리가 도덕성시비에 휘말리다 취임 한달이 되지 않고 사퇴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취임 13일만에 물러 난 이번의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국민대교수로 재직당시 정부의 1차 두뇌한국(BK)21 사업 연구비를 받아 만든 논문들 가운데 하나를 제목만 살짝 바꿔 연구실적으로 중복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이밖에 교수시적 논문을 지도하던 제자의 조사 자료로 먼저 자기 논문을 발표한 사실이 밝혀져 표절의혹을 받았었다.


김부총리는 제자의 논문 표절에서부터 논문의 중복 게재, 자기표절, 연구비 이중수령등 놀란에 휩싸인 논문이 7개나 되어 여?야다에서 사퇴요구가 나오고 교수단체와 노조? 시민? 교원 ? 학부모 단체등의 사퇴요구 성명에 못이겨 결국 그 자리를 내어놓고 만것이다.


김 부총리가 물러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논문 표절, 의혹이다. 교육부총리로서 적절하지 않은 학자적 양식의 결여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을 격양시킨 배경에는 김 부총리가 그동안 청와대 정책실장등을 맡아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이 정부의 소위 개혁정책등에 관한 저항이자 「세금폭탄」발언 등에서 드러난 오만함에 대한 심판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김부총리는 많은 시민단체의 질책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기양양, 「코드인사」의 맥(脈)에 의지한듯 앙앙불락(怏怏不樂)하고 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봐달라. 정책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자난날 자신이 입안한 정책에 대해 우월성을 과시했었다.


들끓는 여론에 밀려 어쩔수 없어 노무현 대통령이 김 부총리의 사표를 수리한 직후 열린 이임식에서 참석한 교육부의 직원 200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김 전부총리는 『또 볼텐데..........  내가 부르겠다』는 야릇한 말을 남겼다.


한(漢)나라 경제(景帝)때 강직하기도 이름 난 원고(轅固)라는 늙은 학자가 있었느데 제(齊)의 사람으로 시경(詩經)에 밝고 학식이 출중하여 박사(博士)가 되었다. 경제는 원고를 청하왕(?河王)의 태부(太傅)로 임명했으나 그는 병으로 사퇴하고 말았다. 그 뒤 무제(武帝)때에 원고는 또 한번 불려 나갔다.


무제에게 아첨하는 많은 유자(儒者)들은 우너고를 못마땅히 여겨 『원고는 너무 소쇠했습니다』라고 중상 참으로 무제는 그를 향리로 보내버렸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90세였다. 원고가 무제에게 불려 나갔을 때 설(薛)사람 공손홍(公孫弘)도 함께 불려 나왔는데 원고가 그에게 말했다. 『공손자(公孫子), 정학(正學)을 말하기를 힘쓰라.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하지 말지어다』-김부총리가 퇴임식에서 직원들에게 남긴 『또 볼텐데…내가 부르겠다』는 말과는 그 색깔과 양태(樣態)가 너무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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