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늙은이가 어떻게 전쟁에 나가느냐며 소련군 장교가 조롱하자 공중으로 동전을 던지고 권총으로 명중시켜 입을 다물게 했다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지는 汝千 홍범도 장군.
汝千는 190cm에 이르는 장신이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인 평균 남성 키가 163cm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으로 따지면 2m 이상의 키이다. 그리고 190cm의 거구가 백발백중의 총쏘기 실력을 겸비한데다 빠르게 말을 타면서 적진으로 달려드니, 그 위압감이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총을 잘 쏘기로 유명해서 일대 포수들에게 지지를 얻고 ‘포계(砲契)’라는 포수 권익 단체를 만들고 대장이 된다.
홍범도는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의 산포수들에게 “일제가 사냥총까지 거두어 가는 것은 우리 민족을 완전히 무장해제시켜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것이니, 이에 응하지 말고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그는 태양욱(太陽郁) 등 동지들과 함께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의 산포수 및 청년들 2백여 명을 규합하여, 1907년 11월 함남 북청의 후치령(厚峙嶺)을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켰다. 홍범도 의병부대의 특징은 주로 산포수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 전투력’이 막강한 부대였으며 당시의 의병부대들 중에서 ‘최강’이었다는 점이다. 홍범도 의병부대는 일본군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하였다.
1920년 청산리에서 일본군37여단 1만 5,000여 명을 맞아 싸워 3,000여 명을 살상시키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장군은 볼셰비키 공산당에 입당하여 조선 독립군의 연합을 위해 노력하지만 자유시 참변을 막지 못하고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레닌 사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과 트로츠키로부터 조선 최고의 혁명 전사로 떠받들어졌던 명예는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말아 카자흐스탄 고려극장 수위로 노년을 보내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홍범도 장군이 사망할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 독-소 전쟁이 한창이었다. 현지 고려인들은 급한대로 홍 장군의 묘소를 일단 그의 생가 근처에 임시로 조성했다. 묘소가 제대로된 공동묘지에 마련된 건 그로부터 6년이나 지난 뒤였다.
고려인 인사들은 성금을 모아 분묘 주변에 철벽을 쌓고, 철로 만든 비도 세웠다.
철비에는 장군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졌다.
“조선의 자유독립을 위하여 제국주의 일본을 반대한 투쟁에 헌신한 조선 빨찌산 대장 홍범도의 일홈은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전하여지리라 - 1951년 10월 25일 레닌기치 신문사 동인, 고인의 전우 및 시내 유지한 조선인 일동 건립”
이후에 묘지에는 홍범도 장군의 반신조각상도 설치됐다.
그리고 1983년에는 조각가 최니꼴라이와 미술가 허블라지미르가 제작한 반신청동상과 추모비도 세워졌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오려는 시도는 사실 북한에서 먼저 시작됐다. 1993년 북한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카자흐스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고려인 사회의 거부로 봉환은 성사되지 못했다.
광복 76주년을 맞은 2021년 8월 15일 저녁 한국에 도착하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이틀 간 국민추모기간을 거친 뒤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카자흐스탄에서 잠든 지 78년 만의 귀환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육군사관학교(육사)가 교내 독립영웅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을 철거해 외부로 옮기고, 대신 일제 만주군 출신 백선엽 장군 흉상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상임위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8년 탄피 300㎏을 녹여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만들어 육사에 설치했다. 그런데 군(軍)의 기원으로 삼았던 이들의 흉상을 이전키로 한 것이다.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어 생도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 장소에 둘 수 없다는 이유다. 국방부는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분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과도한 이념적 기준으로 독립운동 역사마저 지우려는 윤석열 정부의 행동을 두고 여권 내에서조차 “매카시즘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광복회가 “일제가 민족정기를 들어내려 했던 것과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항일 독립전쟁 영웅에 공산주의 망령을 씌워 퇴출시키려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등 역풍도 거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국권을 잃고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떠돌며 풍찬노숙했던 항일 무장독립운동 영웅들의 흉상이 오늘 대한민국에서도 이리저리 떠돌아야겠나. 그게 그분들에 대한 우리의 예우이며 보훈이냐”며 “여론을 듣고 재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 부디 (흉상 철거 방침 취소를) 숙고해달라”고 적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역시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홍범도 장군에게 추서한)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를 누가 어떤 잣대로 평가해서 개별적인 망신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라며 정부의 흉상 철거 계획을 꼬집었다.
1962년 박정희 정부가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고, 2021년 문재인 정부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는 등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홍 장군을 독립영웅으로 인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방부 논리대로라면 국방부 청사 앞 홍범도 장군 흉상도 철거돼야 하고, 박근혜 정부 시절 진수한 잠수함 ‘홍범도함’(1800톤급) 역시 이름을 바꿔야 한다.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
우리 헌법은 임시정부 법통 계승을 명시하고 있다. 지금 ‘박민식 보훈부’가 보이는 일방적 행태는 국가 정통성의 근간을 흔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특히 객관적 사실의 변경 없이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뒤집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이념 과잉’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특히 자유주의를 외치면 ‘매카시즘’ 광풍을 일으켜 남남갈등을 조성하는 행위는 우리 민중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외눈박이가 되지만, 과거역사에 집착하는 자는 두눈을 다잃는다”는 러시아 속담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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