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 여는 세상-“백범 암살되지 않았다면 동족悲劇‘6.25동란’ 없었다”

능산선생 2024. 6. 26.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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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文化)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의 소원’에서 민주정치, 민족통일, 자주외교를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우파 민족주의자로서 끝까지 남북 협상을 시도했던 백범 김구선생. 선생은 한국의 진정한 보수주의 원조다.

“참담한 심정이다. 나를 비롯해 지도층을 자칭하는 이들이 총퇴각을 할 때라 생각한다. 우리같은 지도층이 없었던들 통일은 벌써 성공하였을 것이다. 조선 지도자들은 제1차 시험에서 전부 낙제다. ”

지난 1946년 4당 코뮤니케 무산 뒤, 1월 14일 진보적 민족주의자 몽양 여운형 선생의 기자회견.

김구, 여운형 두 선생은 보수와 진보라는 노선이 달랐지만 38선을 베고 누워서라도 통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1945년 12월 30일 한민당 수석총무로서 단정 수립측이었던 송진우선생이 자택에서 암살되고, 1947년 7월 19일 여운형 선생이 암살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2일 장덕수 선생의 암살에 이어 민족비극인 6.25동란 1년전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이 암살되었다.

김구.여운형 두 거인을 간단히 암살로 처리해버린 분단 세력 이승만은 드디어 그 들만의 정권을 1948년 수립하게 됐다.

1948년 8월 15일 ‘분단정부의 수립’은 일제청산 작업의 맥을 끊고 영구 분단 토착화의 암초가 됐다.

미국에서 보수주의를 수입한 이승만은 이를 '자유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라고 불렀다.

1948년 10월 28일 작성된 "한국 생존의 전망"이라는 미국 CIA 비밀문서에 "이승만의 인격"이라는 파일이 존재한다.

이 파일은 다음과 같이 이승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며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승만의 자유주의는 공산주의를 피해 내려온 이북 출신들을 친일파 청산의 명분 제거와 독재정권 유지에 이용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반공 이데올로기'를 위하여 이용 되었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보수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는 이렇게 서로 연결된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하여 '자유주의'에 이름뿐인 민주주의를 갖다 붙인 정체불명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였다.

독재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보도연맹 학살사건', '3.15 부정선거'와' 4사5입 개헌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전 대통령인 이승만의 뿌리는 박정희로 이어졌다.

김구선생 암살 75년 맞는 오늘, 만일 백범이 암살 되지 않았다면 남북 분단의 비극인 ‘6.25동란’을 없었을 수도 있다. 당시 한반도는 공산주의, 민주주의 갈등 이념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구 선생은 1948년 2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을 통해 “우리를 싸고 움직이는 국내외 정세는 위기에 임하였다. 우리가 기다리던 해방은 우리 국토를 양분하였으며, 앞으로는 그것을 영원히 양국의 영토로 만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 미군 주둔 연장을 자기네의 생명 연장으로 인식하는 무지몰각한 도배들은 국가 민족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고 통일 정부 수립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국이 있고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 속의 38도선이 무너지고야 당 위의 38도선도 철페될 수 있다. ……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3천만 동포, 자매, 형제여! 건전한 조국을 위하여 한 번 더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백범 선생이 암살 후 ‘6.25 동란’전 남북은 잦은 국지전을 전개했다고 한다.

암살범 안두희는 6.25전쟁때 풀려나서 진급까지 할 수 있었다.

정적을 제거한 이승만은 12년간 장기 독재정권의 길을 걸었으며 4.19혁명으로 이룩한 민주정부를 1년만에 이승만으로 은총을 받은 박정희의 독재가 19년간 시작됐다.

‘5.18 광주항쟁’ ‘6.10항쟁’ ‘촛불혁명’의 여정을 통해 세계에서 이념 분단국중 가장 민주주의 르네상스로 부흥하고 있다.

이제 ‘보수의 원조’ 김구선생이 통일위해 38선을 베개 삼은 교훈을 다시 불러 보수와 진보의 화합의 비빔밥을 만들어야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고 나아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신작로’을 뚫어야 한다.

윤석열發‘선제타격론’은 핵무장한 김정은 북조선 정권에 아주 하찮은 일인 ‘새발의 피’다.

여기에 대륙붕 7광구를 놓고 일본과 마찰을 빚고 북한과 러시아의 밀월, 얼어붙은 대중국 관계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고조되고 있다.

<사기>에서 옛날 훌륭한 군주는 장수를 싸움터로 보낼 꿇어앉아 수레바퀴를 밀어주면서 “궁궐안의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

궁궐밖의 일은 장군이 처리하시오“라며, 군공과 작위 및 포상은 모두 궁궐밖에서 결정하고 돌아와 보고도록 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군주는 군대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데 균대의 지휘계통에 혼란을 더하는 亂軍引勝으로 스스로 군을 망쳐서 적에게 승리를 넘겨주는 행위를 하고 있다.

‘38선을 베게 삼아 통일’을 하시겠다는 백범선생 암살 75년이 회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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