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 여는 세상-“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없다!!!”

능산선생 2025. 4. 1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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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당신네들, 하늘을 나는 저 새를 보시오, 저 새가 오른쪽 날개로만 날고 있소? 왼쪽 날개가 있고, 그것이 오른쪽 날개만큼 크기 때문에 저렇게 멋있게 날 수 있는 것이오

리영희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고 정치는 보수와 진보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일념으로 나르는 새를 모방하기 위해 새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어깨에 부친 이키루스는 비상을 시작한다.

영원히 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태양을 향해 힘차게 날아 올라간다. 태양이 가까워지면서 그는 밀랍으로 부친 날개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위 온도가 높아지면서 밀랍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추락한다.”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한 일화로 세상이 주는 날개는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조인 까치, 좌우 날개로 날지 못하고 밀랍처럼 추락하고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금까지 11명이다. 19876공화국 출범까지 7명은 쿠데타와 대통령 하야로, 이후 3명은 대통령 탄핵소추로 대행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고건 국무총리, 박근혜 대통령 때 황교안 국무총리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다. 이들은 대행을 맡은 이후 정치적 위상이 대선 후보급으로 급상승했다.

고건 전 대행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줄곧 20%대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명박·정동영 등 여야 유력 주자를 앞섰지만, 돌연 불출마 선언을 했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그에게 겉과 속이 다른 정치판은 불편했다.

한덕수 당시 국무조정실장이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인용을 전제로 대선 출마를 위해 총리직 사퇴를 권유했고, “국가에 대한 의무이자 소명을 다하는 게 먼저라며 일축한 사실을 수년 뒤 공개했다.

한덕수는 고 전 대행과 공통점이 많다. 진보·보수 정권에서 각각, 두 번 총리를 맡았다. 한 대행은 노무현 정부 끝과 윤석열 정부 시작을, 고 전 대행은 김영삼 정부 마지막과 노무현 정부 처음을 함께했다.

보수 일각에선 조기 대선과 관련해 한 대행 대안론을 띄운다.

그러나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내란에 대처한 방식이다. 고 전 대행은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1980517일 전두환 신군부가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시도하자 사표를 던졌다. 국무회의 배석 요구도 거부했다. 계엄 찬성 의사로 비칠 수 있어서다.

반면 한 대행은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임명을 거부했고, 윤 대통령 탄핵심판은 지연됐다. 거부권을 쓸 수 없는 내란상설특검, 김건희상설특검은 추천 의뢰를 하지 않고 있다. “이제 좌우는 없다.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르겠다고 하지만 부작위로 우리 민주주의 헌정질서가 허물어지고 있다.

이런 분이 대선에 출발하겠다고 하니 대한민국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계엄령을 막지 못했고 탄핵 파면된 의 방패막이인 한편 대통령 권좌를 누리며 민주주의를 지연시킨 내란뿐이다.

그런 자가 을 옹호하기 위해 딴지걸이 하며 대한민국호의 순항을 방해한 파렴치한 범으로 조속한 탄핵과 함께 파면, 국세 낭비를 막아야 한다.

황익성공(黃翼成公 황희(黃喜))은 도량이 넓어서 조그마한 일에 거리끼지 아니하고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을수록 더욱 스스로 겸손하여, 나이 90여 세인데도 한 방에 앉아서 종일 말 없이 두 눈을 번갈아 뜨면서 책을 읽을 뿐이었다. 방 밖의 서리맞은 복숭아가 잘 익었는데 이웃 아이들이 와서 함부로 따니, 느린 소리로, “나도 맛보고 싶으니 다 따가지는 말라.” 하였으나, 조금 있다가 나가보니 한 나무의 열매가 모두 없어졌었다. 아침저녁 식사를 할 때마다 아이들이 모여들면 밥을 덜어주며, 떠들썩하게 서로 먹으려고 다투더라도 공은 웃을 따름이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 도량에 탄복하였다. 재상된 지 20년 동안 조정은 공을 의지하고 중히 여겼으니 개국 이후 재상을 논하는 자는 모두 공을 으뜸으로 삼았다.-용재총화-

세종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재상의 위치에 있는 인물로 지금까지도 흔히 황희 정승이라고 불릴 만큼 정승이라는 말과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승의 대명사가 되었다. 18년 동안이나 영의정을 지낸 대기록을 세운 황희라는 직책에 600여년이 지난 지금 , 먹칠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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