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법이 그런 모양이니 별수가 있느냐. 길가던 사람도 차에 치어 죽고 침실에서 자는 듯이 죽는 사람도 있는데 60이 넘은 나를 처형해야만 되겠다니 이제 별수가 있겠느냐, 판결은 잘됐다. 무죄가 안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정치란 다 그런 것이다. 나는 만사람이 살자는 이념이었고 이 박사는 한 사람이 잘 살자는 이념이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에는 한쪽이 없어져야만 승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하자면 그만한 각오는 해야한다.”
1959년 7월 31일 아침 사형집행 직전 조봉암은 창백한 표정으로 끝내 무표정하게 사형전 성직자가 사형수를 위해 해주는 설교와 기도를 자청하였다고 한다. 사형 집행 전 목사에게 예수가 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의 성경구절인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했느냐, 나는 그의 죽을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내려서 놓아라 한데 ...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를 읽어달라 했다고 한다. 조봉암은 7월 31일 오전 11시 3분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 사형 당하였다.
장택상은 자신의 구명운동에도 불구하고 죽산의 사형이 집행되자 “법은 법이라. 뭐라 자신은 판단하기 어려우나 죽산은 공산주의 테두리를 벗어났다고 믿고 있다…법무장관을 만나 죽산의 형집행을 3·15 선거 후로 미루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는데…집행되었다. 법무장관의 배신이었고 식언이었다. 이 배신에 대한 심판은 이 세상에서 받지 아니하면 천국에 가서라도 받게 될 것이다.”라며 사형을 강행한 법원을 비판하였다.
장택상은 홍진기 법무장관을 집무실로 찾아가 조봉암의 구명 을 호소했다. 홍진기 장관은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니 내년 봄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이박사의 82회 생신일이 됩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쳐 주십시오"라고 답했다. 홍진기는 고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장인이다.
그러나 ‘반공히스테리’ 이승만 정권에 의해 ‘종북빨갱이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한 조선행의 ‘죄’는 후일 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운형은 그에 대한 인물평으로 “그(조봉암)가 술을 좋아하고 잘 마셨으며, 시를 읊었고 강개가 북받치면 눈물을 흘리는 감성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조봉암의 장녀인 조호정씨의 회고에 의하면 그는 여운형과 가장 친했으며, 한국민주당과 박헌영, 이승만, 김구를 다 안좋게 생각했다고 한다. 특히 김구를 ‘테러리스트’라며 싫어했다고 한다.
竹山 선생은 한국 민족해방운동 내부의 좌·우익사상을 지양, 종합하여 독립운동의 기본 방략 및 미래 조국 건설의 지침으로 삼기 위하여 균권, 균산, 균학으로 표현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반으로 하여 개인간에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민족 및 국가 간의 균등을 주장한 이론을 주창했다.
1920년대말에 기본구상이 세워지고, 1931년 임시정부의 '대외선언'에서 체계가 정립되었다. 조소앙은 좌우익의 극심한 대립상황을 겪으면서 중국 쑨원의 삼민주의와 캉유웨이의 대동사상,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등 여러 사상들을 참고하여 좌우 절충적 정치사상을 제시함으로써 그 대립을 타개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삼균주의는 좌·우익 모두의 정치 이념으로는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며, 다만 임시정부 등 우익 중심의 민족주의 운동세력에 상당 부분 수용되었다.
이승만 정권때 농림장관으로 임명돼 농지개혁을 훌륭히 수용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단맛 빨아먹고 정적으로 몰아 간첩죄로 사형선고를 내려 이슬로 사라졌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15일 오전 제주 해비치 호텔·리조트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주최 제46회 제주포럼 정책강연에서 우리나라 발전의 토대가 된 결정적 장면으로 1950년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을 꼽았다. 정부 정책은 선한 의도가 아니라 선한 결과가 중요하다며 “농지개혁으로 만석꾼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이병철, 최종현 회장 같은 영웅들이 혁신을 실현하고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대전환의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참 기가 차고 소가 넘어간다.
64주기 어김없이 죽산의 뜻을 기리는 각계각층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겠지만, 국가가 선생의 명예를 회복하는 최종 단계라 할 수 있는 ‘독립유공자 추서’는 해결될 기미가 없다.
죽산 연구자들은 조봉암의 일제강점기 공산당 활동 경력이 복원 이후에도 서훈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기도 하다. 조봉암의 서훈 문제는 잊힌 독립유공자를 지속해서 발굴하고 우대한 현 정부 보훈정책의 마지막 과제다.
보훈을 강조, 유공자를 적극 발굴하겠다고 보훈부로 승격한 윤석열정부는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죽산이 품은 민중의 뿌리를 다시 되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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