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데일리메일]-김원섭 아침 여는 세상-“尹,너는 ‘간도의 날’아나?”➬홍범도 두번 死後 친일行!!

능산선생 2023. 9. 4.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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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조선 말 세도정치를 하는 장동 김씨 문중과 세상을 뒤집고 싶은 몰락한 왕족 간에 천하명당을 두고 벌어지는 세력다툼을 벌인다. 마지막 장면에 지관이 독립운동가에게 나라를 되찾을 수 있는 땅으로 간도를 알려주고, 그곳에 학교를 짓고 이름을 신흥(新興)으로 지으면 좋겠다

우리의 일본과 중국의 야합으로 짓밟힌 간도를 소재로한 영화명당의 대사다.

190994일 눈뜨고 코베인 우리 역사, 외교권을 빼앗겼던 대한제국은 우리의 영토도 잃게 된다. 과거에는 옥저, 고구려, 발해를 거쳐 우리 땅이었던 간도, 현재는 중국 땅이 됐다.

더 이상 조선 땅에는 살 수 없겠소. 우리 북쪽 간도 땅으로 가서 살아봅시다!”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시기에 못살겠다~떠나자!’라는 열이 불어 버려진 땅 간도지역으로 이주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후 간도 용정에 통감부출장소를 설치하고 관리했던 일본은 1909년 간도협약으로 간도를 중국 땅으로 인정하고 그 대가로 남만주 철도부설권을 획득, 대한제국의 땅에서 떨어져 나가는 비운을 맞았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은 1910년 한일합병이 일어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된다. 국내에서는 1890년대부터 의병활동과,독립협회, 신민회, 보안회 등이 있었지만 와해되고, 합병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독립의군부나 대한광복회가 조직되지만 곧 발각되고 제대로 활동도 못해보고 만주, 연해주, 중국본토, 미주지역으로 독립운동본부를 옮기게 된다.

가장 활발한 독립운동은 만주 서간도에 만든 한인타운 삼원보였는데, 이곳은 이회영 집안이 전재산을 팔아 마련한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와 학교들이 있었다. 1911년부터 1920년까지 3,500명의 독립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는 가장 활발한 독립군기지였으며, 영화에서는 조진웅이 신흥무관학교출신으로 등장한다. 전지현은 신흥무관학교출신 지청천 장군 휘하의 한국독립군 소속 저격수로 등장한다. 전지현이 맡은 역활은 바로 남자현으로 실존인물이다. 그녀는 실제로 3,1운동부터 청산리전투에도 참여하였고, 1933년 만주국수립 축하연에서 일본군 장교의 암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기도 한다. 그녀는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릴정도로 많은 활약을 담당했던 실존인물이다.

일제와 독립군이 싸운 가장 뛰어난 전투는 1920년의 홍범도 장군이 이끈 봉오동전투와 김좌진장군의 청산리전투였다. 독립군사상 최대규모 승리인 청산리대첩은 6일동안 10여차례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일본군 1,200명을 격파했다. 우리 독립군의 상당수는 바로 독립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다. 그러나 이 전투의 승리때문에 일제는 보복으로 간도지역의 무고한 동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는데 독립신문에 따르면 간도참변으로 한국인 3,700여 명이 피살되었고 항일단체들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전한다. 영화에서 전지현의 어머니도 간도참변으로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김원봉은 조직적인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느껴 직접혁명을 추구해, 1919년 만주 길림에서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 요인 반역자를 암살하고 식민통치기관을 파괴하였다. 실제로 의열단 단원들은 조선총독부(김익상, 1921), 종로경찰서(김상옥, 1923), 동양척식주식회사(나석주, 1926), 부산경찰서(박재혁), 밀양경찰서(최수봉)에 폭탄을 투하해 일제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후 일제시대에 우리 선현들은 간도에 군관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을 벌이자 1920년 잔혹하고도 참혹한 대학살을 자행하고 관동대지진 학살을 벌였다.

박은식 선생의 독립운동지혈사에서 산 채로 땅에 묻기도 하고 불로 태우고 가마솥에 넣어 삶기도 했다. 코를 뚫어 갈빗대를 꿰며 목을 자르고 눈을 도려내고, 껍질을 벗기고 허리를 자르며 사지에 못을 박고 손발을 끊었다고 기술했다.

516, 선비족 요, 여진족 금.청등인 오랑캐족인 중국은 지금 한족이라는 비명아래 G2의 위력을 뿜어내고 있다. 몽골 제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대칸.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정복군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한 칭기즈 칸에 의해 하나의 중국이 형성되었고 오랑캐족과 끊임없이 싸우며 세계에서 유일한 한민족을 지킨 우리나라도 처음으로 그들의 짓밟히는 흑역사를 기록했다.

94간도의 날을 맞아 1920년 일본이 패전의 보복으로 조선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했던 간도. 우리 땅이었고, 우리가 일귀 냈고,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간도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윤석열 정부는 간도를 되찾기 커녕, 홍범도 장군을 두 번 죽이면서 일본 오염수 방류로 다시 일본 군국주의 군화발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있다.

특히 육사 교정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고 일제 압잡이 백선엽의 흉상을 앉히려는 움직임이다

백씨는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수많은 독립군을 학살한 악명 높은 간도특설대 중위 출신이다.

일본은 1932년 중국 동북 지방(만주)에 괴뢰국 만주국을 세운다. 간도특설대는 만주국 육군 소속의 조선인 부대로 연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토벌이 주 임무였다.

동북항일연군은 193581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8.1선언을 통해 모든 민족, 모든 계층의 항일연합군 창설을 결의한 것에 따라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동북 방면 다민족 부대로 이루어졌다.

간도특설대에 대해서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일제의 패망으로 해산될 때까지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에 대해 모두 108차례 토공(討攻)’ 작전을 벌였다. 이들에게 살해된 항일무장세력과 민간인은 172명에 달했으며, 그 밖에 많은 사람이 체포되거나 강간·약탈·고문을 당했다라고 하였다.

또한 간도특설대는 정규 야전 부대가 아니라 특수부대로 먼저 활동 지역에 잠입하여 정탐 활동을 벌인 후, 무장 본대가 투입되어 토벌하는 방식으로 독립군 협력자까지 색출해 처단하면서 악명이 높았다.

오호통제라!!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 어리석은 짓을 삼가는 것이 지혜의 입문이다.”

민중을 놓고 치킨게임을 제발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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