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일=편집인 김원섭】주요섭의 단편소설 ‘개밥’은 식모가 주인집 개가 먹을 쌀밥과 고깃국을 훔쳐다가 아픈 딸에게 먹이는 내용이다. 개는 사람의 밥을 먹고 사람은 개의 먹이를 먹는다. 식모의 딸은 고깃국을 그리워하다 영양실조와 감기에 걸려 몸져눕고 생명까지 위태롭다. 결국 딸을 살려야겠다는 모정은 개밥을 놓고 바둑이와 혈투를 벌이게 한다.
“우리 단성이는 그래 개만두 못하단 말인가?”
“왜?”
단성이는 가쁜 듯이 숨을 자주 쉬었다.
“니팝이나 한 그릇…… 고깃국…….”
어멈은 죽그릇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개밥’에 나오는 단성이 아빠처럼 해외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노동자들이 부족해지자 일본 제국은 조선인들이 강제로 비행장 건설장, 군함도 탄광, 비행기 제조장 등에 걸쳐 일하게 하였다. 이를 강제징용 또는 강제 노동을 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1902년, 서구 열강의 이권 개입 경쟁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계속되는 가뭄으로 혹독한 굶주림이 지속됐다. 이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은 하와이 이민 모집을 보고, 이민을 결행하게 됐다. 당시 하와이는 설탕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인 노동자를 선택하게 됐다.
최초의 이민선 갤릭호의 조선인 승선자는 102명이었다. 1902년 12월 인천 제물포항에서 출발해 일본 나가사키를 거쳐, 1903년 1월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질병자 16명을 제외하고 86명만이 상률허가를 받았다.
1903년 1월부터 1905년 8월까지 총 64회에 걸친 항해에 이민자는 7,414명이었다. 하와이에는 약 65개의 농장에 5,000여명의 한인 노동자들이 혼합 농장에서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생활을 했다. 사탕수수농장에는 십장의 감시를 받았고 땡볕 아래서 힘든 노동도 견뎌야만 했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점은 농장에서의 규칙적인 생활과 제도의 압박감이었다고 한다.
한 달 일을 마치면 목걸이처럼 걸고 다녔던 번호에 따라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다. 1905년까지 어른 남자의 월급은 한 달에 17달러 정도였으며 여자나 소년들은 하루에 50센트를 받았다.
1920년까지 하와이에 온 한인 7,400여명 중 2,000여 명은 미국 본토로 이주했고, 약 1,000여명만이 조국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미국 본토로 간 한인들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각 지역 특성에 맞게 하와이에서는 농사를 시카고와 뉴욕에서는 채소상과 식당업을 하면서 정착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독립운동 기여도는 매우 컸다. 임시정부를 비롯해 여러 독립운동가들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2014년 12월17일 개봉돼 화재를 모았던 영화 ‘국제시장’에 나왔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는 1960년대 한국의 실업률 해소와 외화 획득의 필요성, 부족한 노동 인력공급과 경제원조라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독일 이주가 본격화 되었다. 247명의 1차 파독광부를 시작으로 1970년대 말까지 약 8천여 명의 광부들과 약 1만여 명의 간호 여성들이 독일로 떠났다.
그러나 우리 이민 역사중 가장 아프고 가장 치욕스런 역사는 해외 입양. 1950년대 10만명이 넘는 전쟁고아 및 혼혈아동 문제로 해외 입양이 시작됐다. 빈곤 가정의 아동과 미혼모의 아이들이 입양으로 이어졌고 점차 그 수가 늘어나 1980년대에는 해외 입양수 세계 1위 국가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10월 5일, 세계 한인의 날(World Korean Day)을 맞았다. 법정기념일인 이날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며, 재외 한인의 권익 신장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제정됐다.
우리 동포들은 이만리 타국에서 ‘아리랑’의 인맥으로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의 삶이요 희망이요 역사가 된 아리랑이 더 널리 더 멀리 퍼져나가 대한민국의 창(窓)이다.
재외 한인 이산의 역사는 우리 민족 수난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디아스포라는 조국을 떠난 해외 이주자, 난민, 노동자, 소수 민족 등을 포괄한다. 역사적 또는 정치·사회적 관점에 따라 정의를 달리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컴니티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근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유대인들이 바로 대표적인 디아스포라로 알려졌다. 미국이나 유럽등에 퍼져 있지만, 동일한 마인드셋을 공유하고 있기에 유대인이라 하면 일단 이목이 집중될 정도로, 민족성이 뚜렷한 집단이다.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750만 명에 달한다. 세계화 확산으로 증가 추세다.
남과 북을 합친 인구의 10분의 1이 국외에 살고 있는 셈이니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각종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버텨 냈고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국은 이들에게 버팀목이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아낌 없는 성원을 보냄으로써 한민족의 놀라운 단합과 정체성을 과시해 왔다.
그러나 한반도 인구 10분의 1이 해외에 살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킨바 있다.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 피부양자 등록 요건을 강화하고 명의 도용을 막는 등 국민이 느끼는 불공정과 허탈감을 해소할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1월 30일 외국인 건보 가입자는 6개월 이상 국내 거주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지만, 피부양자의 경우 거주 기간과 무관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일부 외국인들이 ‘원정 진료’ 등의 목적으로 시스템을 악용할 우려가 있다며 페이스북에 이같이 밝혔다.
윤 후보는 20대 남성들의 반페미니즘 정서에 편승해 밑도 끝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더니, ‘외국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요건 강화’를 약속하는 과정에서 사회 일각의 외국인 혐오 정서를 부추기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세계에서 유리한 단일민족인 대한민국이 이제는 전 세계 200여개 국가에서 온 약 200만명의 외국인과 함께하고 있다.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이 제노사이드(genocide)당할 경우 우리 해외동포에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주는 인류의 역사다. 급속한 세계화와 기술 발달로 더 확산할 것이다. 떠나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架橋)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조국은 우리의 자산이다. 아시아의 동쪽 귀퉁이에 위치해 변방으로 취급받던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섰다.
한글을 필두로 우리의 문화는 한류의 열풍을 타고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당당히 세계와 경쟁하며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모두가 우리가 함께 이루어낸 우리의 자산이다.
전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750만명의 재외동포는 역사적, 정치적, 이념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다른 어떤 민족보다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재외동포들의 이러한 풍부하고 다양한 체험과 경험은 통일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통일 조국의 청사진을 설계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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